“저기는 왜 들판인가요? 아파트나 짓지” “거긴 황룡사지 주변이잖아요, 또 도시 미관도 해치고 ....” “그동안 경주가 그렇게 속 깊이 생각 해 왔던가요” “ .... ” “경주는 죽었어요. 양심이!” 모처럼 긴 추석연휴를 맞아 경주를 찾은 명망가가 작정하고 한 말에 대한 대꾸이다. 경주는 자타가 인정하는 역사도시, 문화도시이자 한국의 종가집이기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공약의 하나이기도 했던 ‘경주역사중심도시조성’ 계획안을 만들기 위해 문화관광부, 경주시청 관계자들과 함께 경주공업고등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시가지를 조망할 때가 있었다. 당시 경주시 도시과장은 시가지 북쪽인 황성동과 용강동, 동천동 일원을 보면서 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싼 모습이 이질적이라 부끄럽다고 했다. 도시계획을 하고 건축허가를 내 줄 당시에는 시가지와 좀 떨어졌다고 여겼는데 너무 근시안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때 황남동 한옥지구는 쪽샘지구처럼 철거하지 말고 살려서 경주답게 가꾸어 나가자고 입을 모았다. 오늘날 ‘황리단길’의 실마리는 이때부터이다. 최근 들어 불국사 아래쪽에 들어선 고층의 두산위브 아파트로 이래저래 말이 많다. 사실 과해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 방침이라면 무엇이든 하던 40년 전, 박정희 정권에서도 불국사 주변 경관만큼은 지키자고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콘크리트지만 한옥 형태로 하여 골기와 지붕을 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내 주요 도로변과 관광지 가는 길의 양쪽 일정거리를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정해 그나마 역사도시 경주다운 도시미관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편의에 가깝게 고층 아파트를 허가하는가 하면 건물이 상대적으로 없는 지역만 미관지구로 묶어 두고 있다. 지난 과거를 기억하자면 분황사 북쪽 강변의 삼성 아파트부터 소금강산과 황성공원 사이 동천동의 우방·푸르지오 아파트, 노서동고분군(서봉총) 북쪽의 그랜드파크 아파트, 동남산에서 조망하는 도지동의 코아루 아파트 등이 들어 설 때 경주의 시민단체는 주변 풍광과 역사 이미지를 고려한 층수 제한과 미관을 갖추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이미 결정된 바를 뒤집어 놓기에는 너무 미약한 울림에 지나지 않았다. 건물이 완성되고 나서야 다들 호들갑을 떨면서 보기가 싫니, 해도 너무 했다느니 야단이었다. 이렇게 경주는 어리석은 일을 아직까지도 계속 되물림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경주를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는 지도자의 ‘양심’있는 고백을 듣고 싶다. 지금 우리가 혐오스럽다고 하는 것들에 대하여 당시에 누가 결재선상에 있었는지, 어느 기초의원이 규제를 푸는 데 찬성하였는지, 어느 민간 위원들이 승인을 하였는지도 궁금하다. 또 아무리 적법 절차를 따른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었는지도 더 잊혀 지기 전에 기록도 남겨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가 되어 훗날의 ‘오늘’을 살아갈 다음 세대들이 거울을 삼아서 더 나은 ‘미래’의 경주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것을 공평(公平)이라 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맞는 것을 형평(衡平)이라 한다. 더불어 균형(均衡)이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를 뜻한다. 이 세 단어는 거의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주시민은 이 세 가지에서 만큼은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서는 아니 된다. 신라 고분 밀집지역인 쪽샘지구를 보상하고 사들이다가 첨성대 북쪽 길옆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제외시킨 일이나, 노동·노서고분군 주변 건축물을 매입한 뒤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일은 이미 팔고 나간 분들의 공분을 사기에 알맞다. 국립공원이나 역사성이 있는 산자락을 파고 올라간 건축물 등 찬찬히 살펴보면 이러한 일들은 숱하게 더 있을 것이다. 교묘히 피해간 경우나 비상식, 비공식,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편법(便法)이라 하고 속된 말로 ‘꼼수’라고 한다. 적어도 경주시민들이 “저것은 편법이야, 봐줬구만!”이라는 말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말처럼 괜하게 의심 받을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다’는 말처럼 시민의 마음을 헤아려 가면서 경주다운 경주로, 그리고 한국인의 마음의 고향에 어울리는 경주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하늘에 서 본 경주가 아름답도록 집을 지을 때 지붕을 평면으로 하지 않도록 한 것과 시 기구 조직에 도시디자인과를 신설하는 등은 크게 찬사를 보낸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로 맺어서 ‘과거 보다는 미래를 그리고 미래에 관심을 두는 경주가 되길 바란다’는 말처럼 이제는 시민들에게 공정, 조화, 평형, 동등, 타당이라는 단어가 받아 들여 지도록 하자. 그렇지 않다면야 아예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모든 규제를 풀어서 오릉 앞 벌판에 상가타운을 짓고 보문 들판에 주거지를 만들며, 서악 들판에는 신시가지를 조성하자. 황룡사지 앞뜰에 초고층 아파트를 올리고 남산이며, 낭산과 선도산까지 눈 아래 내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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