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기념물 제32호로 지정된 김인문묘는 원형봉토분으로 봉분의 높이는 7.0m, 봉분 직경은 27.1m, 둘레는 85.4m이다.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분 아래쪽은 괴석으로 둘러싼 호석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받침석 5개가 호석에 기댄 채 노출되어 있다. 묘의 동북쪽 비각 안에 묘비를 세웠던 귀부가 남아 있다.
이 귀부는 태종무열왕릉의 귀부와 비슷한 양식이다. 거북이 목을 길게 빼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형상이다. 앞 뒷발의 발가락이 모두 5개인 점이 태종무열왕릉 귀부와 다르다. 목에 새겨진 5가닥의 주름이 사실적이고 자연스럽다. 거북 등의 육각무늬 주위로 구름문양을 새기고 그 바깥쪽으로 구슬을 꿰어 놓은 듯한 무늬를 돌렸다. 등 가운데 육각무늬 안에 왕릉비가 아닌데도 ‘王’자가 새겨져 있어 의아하다.
능비가 세워진 왕릉으로는 태종무열왕릉·문무왕릉*·성덕왕릉·흥덕왕릉이 있고 묘비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이곳 김인문묘가 유일하다. 이들 능묘비의 비좌는 모두 귀부의 머리가 거북머리이나, 선사(禪師)들의 탑비 귀부 머리는 모두 용의 형상을 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김인문묘의 비편은 서악서원 누문(樓門)인 영귀루를 수리하면서 인부들에 의해 서쪽 모서리 부근의 땅속에서 출토되어 서원 한편에 보관하고 있었다. 1931년 서악방면의 유적을 답사하던 당시 조선고적연구회 경주주재 연구원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와 그의 조수 이성우(李盛雨)가 이를 발견하여 신라 금석문임을 알고 경주박물관으로 옮긴 후 이를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비편은 화강암으로 높이 63.0㎝, 너비 94.5㎝, 두께 18.4㎝이나 원래의 비석은 높이 약 182㎝, 너비 약 121㎝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26행이고 글자 크기는 약 2.3㎝이다.
이 비석이 세워졌던 귀부의 비좌는 비신의 크기에 비해 조금 작은데, 이로 인해 이 비석이 귀부와 짝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이것은 비신 하단부에 촉이 끼워졌기 때문이다.
이 비석이 발견되기 전까지 김인문묘 귀부를 김유신묘 혹은 김양묘의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김유신묘에 묘비가 있다는 기록과 이 묘가 지역에서는 각간묘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김양묘라고 한 것은 『삼국사기』 「열전」에 김양을 무열왕릉에 배장하였다는 기록 때문이다.
현재 1/3 정도 남은 비편에는 약 400자의 비문이 있는데, 해서로 쓴 글자를 3.3㎝ 크기의 방형 정간(井間) 속에 음각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 중 ‘조문흥대왕(祖文興大王)’, ‘태종대왕탄미기공(太宗大王歎美其功)’, ‘공위부대총관(公爲副大摠管)’ 등이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조에 기록된 그의 사적에 해당되고, 그 밖의 비문 내용도 『삼국사기』의 기록과 같은 점이 많아 이 귀부를 김인문묘의 것으로 보고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현존 비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삼국사기』 「열전」의 기록으로 보아 7세기말쯤으로 추정된다.
속담에 ‘권력은 부자 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한다. 고금(古今)이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부형(父兄)은 물론 친족을 살해한 후 왕권을 차지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부처님 재세 시 인도 마가다국의 아자타삿투(아사세)는 부왕인 빔비사라로부터 왕위를 빼앗고 아버지를 옥에 가두어 죽게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오이디푸스가 선대(先代) 왕인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테베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인도의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 자한은 막내아들인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조카인 애장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헌덕왕을 비롯하여 신라 하대에는 친족인 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권을 차지한 사례가 허다하다.
조선에서도 형인 정종에게 양위를 강요하여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상왕인 태조 이성계와 세력다툼을 벌리고,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김인문은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굳이 사양하고 지금 서악에 누워있다. 쌀쌀한 날씨에도 김인문묘를 덮고 있는 잔디가 파랗다.
*능비는 대개 능의 앞에 있는데 문무왕의 능비의 귀부는 사천왕사지 남편에 있는 2기의 귀부 중 서쪽의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된 비편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