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따며 -이근식 가을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마을 여인들이 모여 사과를 딴다. 그대의 맑은 꿈을 한 알씩 따 담으면 우리들 일상의 아픔이 우우 몰려와서 반짝이는 별이 된다. 외로운 유행가 가락 그 의미처럼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금척리 사람들도 마침내 어둠을 쪼아 먹는 별이 된다. 바람처럼 떠가는 구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뒤안길에 살다가 빛을 만난 누님 같은 얼굴이 모이면 바구니 속에서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난다. -비둘기 울음으로 퍼져나가는 사과향기 시인은 금척리가 고향이다. 거기서 교사 생활을 하기 전 3년간이나 사과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 날은 마을의 아낙들이 사과를 따러 나왔다. 사과 따기는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노동체험이다. 그녀들은 “뒤안길에 살다가/빛을 만난 누님 같은” 얼굴이다. 한을 삼키면서 그들만의 그늘에서 살아온 그녀들이 유행가를 부르면서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에 ‘사과 따기’라는 노동행위는 새롭고도 신선하게 바뀐다. 사과 따기는 어느새 그녀들의 맑은 꿈을 따는 행위가 되고, 그 맑은 꿈은, 놀라와라, “우리들 일상의 아픔이/우우 몰려와서/반짝이는 별”이 되는 기적을 낳는다. 금척리 사람들마저도 어둠을 쪼아먹는 별이 된다. 이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미적 표현은 “바구니 속에서/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난다.”라는 구절이다. 이는 ‘바구니 속에 담긴 사과에서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난다’는 말이다. 사과 향기가 산비둘기 울음으로 퍼져 날아가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빛으로 나온 마을 여인들 앞이니 가능한 알이다. 사물들은 즐겨 주체와 교감하면서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 시는 의미에서도 감각에서도 새로움을 획득하고 있다. 이근식 시의 미학을 이 시점에서 다시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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