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가을은 가로수의 변화를 보고 느낀다고 한다. 머지않아 줄지어 늘어선 은행나무의 샛노란 잎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 줄 것이지만, 정작 요즘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않는 것 같다. 바닥에 떨어진 암(♀)은행나무 열매의 고약한 악취 폭탄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다가 열매를 밟았다가는 낭패를 본다. 신발 바닥을 흙에 문지르고 세재로 닦아도 냄새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경주의 시가지와 보문관광단지의 가로수도 열매가 떨어져 냄새를 풍기는 암(♀)은행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다. 비단 경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도심가로와 공원이나 관광지의 초가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달 보문관광단지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국제물주간 포럼에 참석했던 내·외국인들이 하이코 행사장 주변의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열매를 밟고 나서 난처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목격했다. 경주 시가지에도 엄청난 양의 열매가 떨어져 시민들이 많이 밟고 다니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의 신발에 묻은 냄새가 자동차 안이나 가로변의 사무실에도 나고, 도로에 떨어진 열매는 차량에 짓밟혀 바퀴에 묻어서 주차장에서도 악취가 난다고 한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옛날부터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유용한 나무이었다. 약 1억5천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이라고 하여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세계적으로 은행나무과에 오직 은행나무 1속, 1종만이 있을 뿐이며, 이 세상에 변종이 없어 사람으로 치면 처음부터 외동으로 자라온 나무이다. 은행나무는 원산지가 중국 남부이지만, 수천 년 동안 우리나라 전역에 자라왔으므로 우리의 나무라고 할 수 있으며,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자웅이주(雌雄異株)이다. 은행(銀杏)은 열매가 살구나무의 열매를 닮아 은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행나무를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 열매는 손자대에 가서 얻는다고 하여 공손수(公孫樹)라고 하며 또는 행자목(杏子木)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에서는 은행나무를 공자의 행단(杏壇)에 많이 심었는데 이를 본 따서 우리나라에서도 문묘(文廟)나 향교, 서원, 사찰의 경내에 많이 심었고, 관가의 뜰에 심기도 했다. 오늘날 은행나무는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은행나무는 전국의 도시 가로수 중에서 가장 많이 심겨져 있다. 이유는 다른 나무에 비해서 병충해가 없고, 대기공해에 강하고, 대기오염의 정화능력이 뛰어나고, 여름철에 그늘이 좋고, 이식이 잘 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은행의 잎이나 목재 속에 살균·살충의 성분이 있어서 병충해가 덤벼들지 않으므로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고 관리비가 적게 드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지로 만든 문집의 책갈피에 은행잎을 끼워놓아 좀벌레를 막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에 와서 책갈피에 노오란 은행잎을 꽂는 낭만적인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장롱 속에 오래 보관하는 옷이나 천에 좀벌레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은행잎을 넣었으며, 쌀뒤주 안에도 은행잎을 창호지에 싸서 넣어 두기도 하였다. 이 모두가 살충의 성분이 들어있는 은행잎을 이용한 구충방법의 좋은 예이며, 여기에 이용한 잎은 모두 즙액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푸른 잎을 사용하였다. 그 외에도 은행잎으로 퇴비를 만들어 밭에 뿌리면 농작물에 병충해가 적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터득해 낸 지혜로운 경험과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은행의 열매는 가을에 노랗게 익는다. 은행나무 열매는 말랑말랑한 과육인 외종피(열매 껍질), 중종피(은백색의 딱딱한 껍질), 내종피(식용으로 쓰이는 연질부분을 덮고 있는 얇은 막)로 되어있다. 내종피 속에 청록색의 배젖(배유)이 있는데 인(仁)이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먹는 부분으로써 은행이 싹트는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양분 덩어리이므로 영양가가 높은 고급식품으로 건강을 돕는 장수식품으로 인기가 대단히 높다.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그 비밀은 열매의 외종피에 있다. 외종피의 냄새는 은행나무의 씨앗을 사람이나 동물 및 곤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본능이다. 은행열매를 날 것으로 먹으면 독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굽거나 삶아서 또는 볶아서 먹어야 되며 하루에 15알 이내가 알맞다고 한다. 현대에서도 은행나무 잎에서 추출한 엑기스로 여러 종류의 혈액순환제 신약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일반 성인들에게 상당히 인기있는 약재이다. 그 밖에 은행나무의 색은 연한 황갈색을 띠면서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고 방충성분이 있어서 예부터 고급 가구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간혹 오래된 은행나무에는 특이하게 나무 자체에서 유주(乳柱)라고 하는 유방 같은 돌기현상이 생긴다. 옛날에 젖 부족으로 고민하는 부인이 유주가 달린 은행나무에 기원하면 젖이 많아진다는 속설도 있다. 이와 같이 은행나무는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하면서 일상생활에 소중하게 쓰였던 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은행나무 노거수와 가로수길을 찾아 걷고 사색을 하며 부채꼴 모양의 샛노란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에 꽂거나 생각나는 사람에게 가을소식과 함께 보낸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경주문화원과 운곡서원에 자라는 은행나무 노거수는 경주의 명물이며, 통일전 앞의 가로수길과 서면 도리의 은행나무 숲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냄새를 풍기는 암(♀)나무가 은행나무의 좋은 이미지를 잃어가고 있으며, 은행나무 악취 폭탄에 대한 민원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공원수나 가로수를 심을 때 암(♀)수(♂)를 구별해서 수(♂)나무만을 골라서 심자고 하지만 열매가 열리기 전에는 구별이 어려운 점이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은행나무 수정기에 적화제를 사용하여 열매를 줄이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열매가 맺히는 암나무를 제거하고 수나무로 교체하는 지자체도 늘어가고 있다. 우리 경주시도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의 쾌적한 보행환경을 위해서 은행나무 가로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