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경주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째다. 지난해 9월 12일 오후 7시 44분경 규모 5.1 지진이 발생했고, 48분 뒤인 8시 35분 지진 관측 이래 최대인 5.8 규모의 본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12일 밤에만 규모 2.0 이상 지진이 52차례 발생해 시민들의 평온하던 저녁일상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지진은 다음날인 13일 2.0~3.1 규모의 지진이 15회 발생하는 등 9월에만 규모 2.0 이상 여진이 총 138차례 일어나면서 공포감은 점점 고조됐다.
이어 규모 2.0 이상 여진은 10월 15차례, 11월 7차례, 12월 9차례로 계속 이어졌다. 올해 들어서는 1월 4차례, 2월~3월 각각 5차례, 6월 4차례 등 총 23차례의 여진이 발생, 그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9월 6일 현재 지난 6월 27일 경주시 내남면 남남서쪽 8km에서 규모 2.0의 여진이 발생한 뒤 72일째 지진은 잠잠한 상태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규모 2.0 이하의 지진을 모두 포함한 9.12지진 여진은 총 633회이며, 그중 3.0 이상은 22차례(4.0 이상 1차례)로 나타났다. 유례없는 지진을 처음 겪은 시민들은 황급히 몸을 피해 학교 운동장, 황성공원 등으로 대피했고 밤새 불안감에 시달렸다. 지진으로 경주에서만 6명이 다치고 재산피해가 6137건, 98억여 원에 이르자 정부는 지난해 9월 22일 지진피해로는 처음으로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당시 재난문자발송 등 지진상황 전파 지연, 재난 안내방송이 제기능을 못하는 등 초기대응에 허점을 드러내면서 당국으로 향한 비난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지진 발생 1년이 다가오는 지금 당시 문제점으로 나타난 재난문자발송, 지진 대응매뉴얼 등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 상당부분 개선됐다. 그러나 경주시의 지진 관련 구호물품 관리 부실, 지진대피소 대시민 홍보부족 등은 서둘러 개선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지진방재 종합대책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9.12지진 이후 정부는 12월 16일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진방재대책으로 지진 조기경보 및 국민안전교육 강화, 내진설계 의무대상 확대·내진보강, 지진방재투자 및 민관협력 확대, 지진대응 역량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경북도도 자체로 지진 대응 조직·연구인력 확충, 시설물 내진기능 보강, 경보·대피 시스템 개선, 매뉴얼 현실화, 교육훈련 강화 등 지진방재 5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먼저 9.12 지진 당시 논란이 일었던 긴급재난문자 발송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행안부와 기상청으로 이원화돼 있던 발송체계를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
또 지진대피소를 위치를 명확히하기 위해 옥외 대피소 전국 8155곳, 실내 구호소 2489곳을 구분해 지정했다. 대피소 위치는 네이버·다음 지도·티맵(T-map) 등에 수록해 주민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우선 정부는 지난해 2월 내진보강 의무 대상 건축물을 3층 또는 500㎡ 이상에서 2층 또는 500㎡ 이상으로 확대한 것에서 더 나아가 하반기까지 모든 주택과 20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2단계 기존 공공시설물 내진보강기본계획의 내진율을 49.3%에서 54%로 상향 조정하고 투자규모도 1조7380억원에서 2조8787억원으로 확대해 내진성능을 조기 확보할 계획이다. 학교시설의 경우에도 올해부터 매년 2500억원을 투자해 내진보강 소요기간을 67년에서 18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단층연구와 관련 법령 제정 등 장기적인 지진대책도 세웠다. 행안부는 올해 2~4월 원자력안전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함께 다부처 공동 지진단층조사 기획연구를 실시했다. 전국의 단층을 5단계로 나눠 1175억원을 투입해 단계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1단계로 2021년까지 493억원을 투입해 동남권 지역의 단층조사를 실시한다.
지진관련 법령도 개정됐다. 우선 올해 3월 ‘지진·화산재해대책법’을 개정해 내진설계기준 개정시 행안부 장관과 미리 협의하도록 했고, 4월에는 내진설계기준 공통적용사항도 마련했다.
또 1월 기상청장에게 지진 및 지진해일 등의 긴급재난문자 송출권한을 부여하도록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도 개정했다. 이 밖에도 건폐율·용적률 완화, 건축물 내진설계 의무대상 확대 등을 위해 올해 2월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했고, 문화재 재난관리체계 개선 및 문화재 조사인력 구성과 조사방법 개선을 위해 문화재청에서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했다. 또한 지진발생시 구체적인 국민행동요령 제공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장소별·상황별 행동요령 표준안을 마련해 제작·배포했다.
-부실한 지진 관련 구호물품 관리 개선해야
지난해 지진 발생 이후 경주시가 각 읍면동별로 배치한 지진 관련 구호물품의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시는 지난해 지진대피소 생활필수품으로 텐트 200개, 모포 7000장, 매트 300개, 에어매트와 휴대이불 각각 1250개 등을 읍면동사무소로 배부했다. 지진 진앙지인 내남면에는 이와 함께 안전모, 비상식량, 라디오, 담요 등을 담은 생명가방 2560개를 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구호물품은 대부분 읍면동 사무소 창고에 다른 물품들과 함께 쌓아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진 구호물품이 보관돼 있다는 표식도 없어 재난 발생 시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은 지난 6월 실시한 경주시의회 2017년 행정사무감사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정현주 의원은 읍면동 행감에서 “대부분 읍면동이 창고 등에 보관을 하고는 있지만 공간이 부족해 쌓아놓은 수준이며, 일부 읍면동은 창고가 비좁아 화학물품 냄새가 나는 곳도 있었다”면서 “이는 공무원들이 설마 다시 재난이 나겠냐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비춰진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또 “구호물품보관창고라는 표시가 없어 인사 때마다 각 읍면동의 담당자가 바뀌거나, 담당자 부재 시 이를 찾는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구호물품은 구호물품대로 별도로 관리해 응급 시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곧 읍면동 지진 관련 구호물품 뿐만 아니라 보급품 전체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일 계획”이라며 “조사 결과에 따라 구호물품 보관방법 등에 대한 조치도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진대피소 등 위치 대시민 홍보 부족
경주시가 지정한 지진대피소 및 실내구호소 장소를 알리는 대시민 홍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해 지진 이후 23개 읍면동 권역별로 최단거리에 대피할 수 있도록 학교 운동장, 공원 등 132개소를 ‘지진대피소’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또 지진피해 장기화시 주거지가 파손된 이재민 등을 대상으로 집단구호를 실시하기 위해 내진설계가 적용된 시설물 24개소를 실내구호소로 지정했다.
그리고 행정안전부가 대피소 위치를 네이버·다음 지도·티맵(T-map) 등에 수록해 쉽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했지만, 이 사실조차 모르는 시민이 많다는 것. 특히 고령일수록 스마트폰 등의 활용이 어려워 경주시의 홍보가 아쉬워 보이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경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무원이나 관련 기관 직원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민들이 주거지와 가장 가까운 지진대피소나 실내구호소 위치를 잘 모르고 있다”면서 “경주시가 지진 발생 당시보다 경각심이 낮아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지진대피소 홍보를 위해 경주시의 각종 행사 때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하고 있다”면서 “지난 4월 국민안전처에서 지진대피소 표지판 표준화를 확정했고, 시는 10월까지는 대피소마다 표지판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진, 한옥마을 지붕 풍경도 바꿔
9.12지진은 황남동 등 경주의 고풍스럽던 한옥마을의 지붕 풍경도 바꿔놓았다. 경주시에 따르면 강진으로 경주지역에는 주택 총 5955채, 40억7000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한옥이고, 대부분 지붕 기와가 파손됐다.
특히 황남동, 사정동 등 역사문화미관지구 내 골기와 지붕의 한옥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 기준에 따라 지원되는 금액은 전파 900만원, 반파 450만원, 소파 100만원에 불과하다. 지붕 기와가 깨지는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주민들은 정부지원금으로 100만원씩 받았다.
그리고 강진 발생 이후 많은 비가 내리면서 집으로 비가 새는 상황에 이러자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공사기간이 짧고, 비용이 골기와의 4분의 1 정도 수준인 함석기와로 지붕을 복구했다. 지진 발생 1년 후인 현재 황남동과 사정동 등 한옥지구에는 다섯 집에 한 집 꼴로 함석기와가 눈에 띄면서 한옥마을의 고풍스런 맛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도시계획조례에 따라 역사문화미관지구에는 한옥을 신축 또는 수선할 때는 전통양식을 따라야 하고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 등 처분을 받는다. 이 때문에 지진 피해 일부 주민들은 기와지붕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손사레를 흔들며 거부하기도 했다.
주민 A씨는 “골기와로 지붕을 복구하려면 수 천 만원이 드는데 재난지원금은 100만원 밖에 되지 않아 함석기와로 복구할 수밖에 없었다”며 “비가 새고, 또 다른 재난이 언제 올지 몰라 반영구적인 함석기와로 지붕을 복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정부에서 한옥으로 건축할 것을 규정해놓고, 또 그동안 집안 내부 수리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며 “막상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뒤에는 정부가 실질적인 지원은 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외에 추가 지원에는 재정이 부족하고, 지원근거도 없어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천재지변으로 피해를 본 주민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문화재 빼고 공공시설물 대부분 복구 완료
강진으로 인한 피해는 공공시설물과 문화재도 비껴갈 수 없었다. 시에 따르면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공공시설은 총 182건, 57억9400만원. 이중 문화재 피해가 59건, 48억5300만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문화재를 빼고 대부분의 공공시설물은 복구됐다. 문화재도 분황사 모전석탑 보광전, 경주향교 대성전 벽체, 원원사지 삼층석탑 등 일부 문화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복구를 마쳤다.
-학교 건물 내진보강사업 추진 ‘내년 3월 전 완료’
경주지역 학교 건물의 피해 또한 전 지역에 걸쳐 발생했다. 경주교육지원청에 따르면 강진으로 58개 학교에서 피해가 접수됐다. 9월 현재까지 총 예산 22억9000여 만원을 들여 대다수 학교에서 발생한 비구조채 균열 및 학교 건물 마감탈락 등의 피해 복구를 완료했다. 현재 시내 한 초등학교의 다목적강당 지붕교체 등을 위한 설계 용역이 진행 중이며, 10월 중 착공해 연내 복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특히 경주교육지원청은 최근 건립해 내진설계가 적용된 학교를 제외한 51개교를 대상으로 총 150억5000여 만원을 들여 내진보강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현재 32개교 76동에 대한 내진보강 설계용역을 완료하고, 내달 착공할 예정이다. 또 19개교 30동에 대해서는 내진보강 설계 용역 중에 있으며, 12월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경주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내진보강사업은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를 완료해 진행된다. 내년 신학기 전까지 교실, 강당, 급식소 등 실제 학생들이 사용하는 건물을 중심으로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안전하고 신속한 공사를 통해 학생들의 안전과 학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갖춰나가겠다”고 밝혔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총 2702명 심리 상담
지진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주민들도 속출했다. 특히 진앙지인 내남면 부지리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았다. 이를 위해 경주시는 내남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긴급심리지원을 실시하는 동시에 심리지원단 5개팀을 구성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에 들어갔다. 지진 발생 후 총 2702명이 심리 상담을 받았으며, 현재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주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주시는 재난 등 위기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신건강문제 예방 및 체계적 지원계획을 수립해 심리대응체계 구축과 재난 이전의 일상생활로 복귀 및 회복 증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경주시보건소 관계자는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개인마다 다른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특성상 향후를 대비하기 위해 정신건강 워크숍, 재난심리전문가 역량강화, 재난심리지원단 재정비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