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출신인 황소영 씨는 1994년부터 23년간 한국 생활을 한 이제는 어엿한 한국인이다. 중국 하얼빈 흑룡강성 목단강시 출신인 소영씨는 당시 먼저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생활 중이던 친척언니를 통해 남편을 소개 받아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
“당시에는 한국으로 오는 것이 모두의 로망같은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한 달을 근무해 받는 돈이 중국에서는 열 달을 일하고 받는 돈과 같았거든요” “그래서 남편을 소개 받았을 때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결혼을 승낙했죠. 물론 남편이 좋은 사람이었고 사랑했기 때문이죠. 절대 한국에 오고 싶었던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었어요(웃음)”
소영 씨에게 한국의 첫 이미지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자판기, 보일러, 지하철 등 당시의 중국에서는 귀하고 보기 힘든 것들이 눈앞에 보이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고.
“너무 좋았죠. TV에서 보던 한국 생활을 할 생각에 그냥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경제차이는 20년 정도 난다는 기사들이 계속해서 나왔는데 실제로 그것을 느껴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 특히 처음 탔던 지하철이 잊혀지지 않네요”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몇 가지 작은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소영 씨의 한국생활은 큰 어려움없이 무난했다고 한다.
“저 자신은 한국생활에 문제가 없었죠. 좋은 사람들만 만났고, 저 역시 한국어를 잘하니 의사소통에 문제도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몇 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가 줄임말을 이해 못했던 것이에요. 처음 학교를 보내고 한동안 교과서 없이 학교에 보냈어요. 챙겨오라는 말이 없어서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죠” “한번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저한테 ‘엄마 왜 나는 교과서를 안가져가?’라고 묻는데 뭔가 이상하더라구요. 그래서 알림장을 확인하는데 글쎄 ‘바생(바른생활)’, ‘말듣’(말하기 듣기), ‘산익’(산수익힘책) 이라고 써있는 것이 교과서인 줄 몰랐던 거에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그리고 아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는데 학교에서 중국말 하니까 친구들이 많이 놀렸나봐요. 그 사실을 알고부터는 중국어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아들은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중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상황이 우습죠. 엄마가 중국어를 잘하는데 돈 내고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자녀들도 이제는 성인이 됐고 소영 씨는 2013년 지역에서 중국여행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후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의 장성우 센터장의 권유로 일을 함께하며 지역에서 생활하는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 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벌써 한국 생활이 20여 년이 넘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국어를 잘할 수 있어서 정말 무난하게 잘 지냈지만, 막 한국생활을 시작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면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한국에 왔지만 그들만의 그룹을 따로 만들고 고향에서 하던 생활이 그대로 이어지고, 그것이 곪아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의 프로그램들이 최고수준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적응을 위한 배려와 도움은 좋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배려는 조금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배려가 자칫 그들에게는 동정으로 보여질 수 도 있고 참견이 될 수도 있으니 정말 ‘이웃’이나 ‘친구’처럼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