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또는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 유적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이들 문화재에 대해 문화재청, 경주시 등 관련기관이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발굴 이후 보문동부부총으로 불리다 이름을 고친 보문동합장분(普門洞合葬墳) 얘기다. 적석목곽분과 석실분이 공존하고, 국보 제90호 금귀걸이가 발굴돼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이 무덤이 흔적을 잃어가고 있지만 문화재청과 경주시 등 관리당국이 방치하고 있다는 것. 경주시 보문동 소재 합장분은 현재 무덤의 형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훼손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덤 봉분은 무너져 내렸고, 봉분 위로는 수목이 무성히 자라고 있어 문화재 전문가가 아니면 도무지 보문동합장분임을 인지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당연히 이곳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도 없어 무덤을 찾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보문동합장분은 적석목곽분과 석실분이 공존해 신라시대 무덤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는 아주 작은 금 알갱이와 금실을 이용한 정교한 장식 등이 삼국시대 귀걸이 중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보문동합장분의 역사적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고 있지만, 국가지정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2011년 10월 ‘경주 보문동합장분-96년 만에 쓰는 발굴보고서’를 주제로 신라능묘 특별전을 열고 합장분의 가치를 알렸지만, 그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문화재청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으로 보문동합장분 출토 금제 귀걸이와 무덤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하고 있지만 현장 관리는 뒷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러자 경주시가 보문동합장분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서둘러 지정해 훼손된 봉분을 복원하고, 가능하면 재발굴도 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주의 한 문화계 관계자는 “경주시가 산적한 문화재로 인해 중요 가치가 있는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관리는 소홀히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하며, “다른 지역 같으면 국보급 문화재로 관리할 만큼 중요한 문화재가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서둘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고, 복원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당시 발굴이 이미 완료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당장 경주시 차원에서 취할 조치가 없다”면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고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이 되지 않아 복구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사적 지정 등은 문화재청과 협의할 사안으로 향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적석목곽분·석실분 공존 중요한 가치 지녀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관리 소홀로 훼손돼가고 있는 보문동합장분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신라 고분 변천사를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보문동합장분은 한 봉분 안에 2개의 매장시설이 있는 무덤이다. 적석목곽분이 먼저 만들어진 뒤 훗날 합장을 위해 원래 있던 봉분 한쪽을 헐어내고, 이 곁에 붙여 석실분을 만들었다. 무덤 축조 시기는 적석목곽분이 약 1500년 전인 520~540년으로 추정되고 석실분은 조금 늦은 540~560년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라시대 무덤은 적석목곽분에서 석실분으로 변경돼가는 데, 이처럼 2개의 매장시설이 존재하고 있는 보문동합장분은 신라의 무덤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이다. -삼국시대 최고 명품 국보 제90호 금귀걸이 출토 석실분에서 출토된 국보 제90호 금귀걸이는 삼국시대 귀걸이 중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보물이다. 신라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금속 공예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는 것. 문화재청에 따르면 가운데를 빈 공간으로 해 무게를 가볍게 한 태환이식 귀걸이로 길이는 8.7cm, 무게는 58g 정도다. 귀걸이의 몸체가 되는 커다랗고 둥근 고리에 타원형의 중간 고리가 연결됐으며, 그 아래는 나뭇잎 모양의 화려한 장식들이 매달려 있다. 커다란 둥근 고리에는 거북등무늬와 같은 육각형으로 나눠 그 안에 4엽 혹은 3엽의 꽃을 표현했는데, 꽃 하나하나에 금실과 금 알갱이를 붙이는 누금세공법(鏤金細工法)을 이용해 섬세하게 장식했다. 특히 지름 0.5㎜도 안되는 작은 금알갱이가 약 5000개나 쓰여 신라인의 정교한 손재주와 정성이 돋보이는 귀걸이다. 밑부분에는 나뭇잎 모양의 작은 장식들을 금실을 꼬아서 연결하고 장식 끝에 커다란 하트모양을 달았다. 신라 귀걸이 장식에는 대부분 이처럼 서역에서 전래된 누금세공법이 사용됐는데 그 중에서 태환을 비롯한 전체에 누금세공법을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화려하고 놀라운 세공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적석목곽분에서는 삼엽문 환두대도와 금귀걸이, 은팔찌 등이 출토됐다. -일제강점기 발굴 ‘부부총’에서 ‘합장분’ 명칭 고쳐 국립경주박물관 등에 따르면 보문동합장분은 지난 1915년 발굴돼 부부가 합장된 무덤이라는 뜻으로 ‘부부총’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 지난 2011년 10월 국립경주박물관이 두 번째 신라능묘 특별전으로 ‘경주 보문동합장분-96년 만에 쓰는 발굴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시행한 연구 결과 두 명의 여성이 묻힌 무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부부총을 합장분으로 개칭했다. 발굴된 지 96년만의 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 단지 12일 만에 발굴을 마치고 간단한 도면만을 남겨 합장분의 전모를 알 수 없었다는 것. 또 당시 경주 유적 발굴 이후 처음으로 적석목곽분 내부를 조사한 셈으로 구체적인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부실한 조사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물관은 이러한 미공개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해 그 결과물의 하나로 보문동합장분의 발굴보고서를 발간하고 합장분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특별전을 열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 지위는 상류층 무덤 속 주인공은 출토된 유물을 통해 모두 여성으로 추정했다. 석실분의 주인공은 국보 제90호 화려하고 굵은 금귀걸이를 하고 있어서다. 통상적으로 신라인의 경우 가는 귀걸이를 하고 대도를 허리에 차고 묻혀 있으면 남성, 굵은 귀걸이를 하고 묻힌 사람은 여성으로 판단한다. 목곽적석분의 주인공도 대도가 허리춤이 아닌 머리 위쪽의 부장품 상자에서 출토된 점을 미뤄 여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무덤의 주인공이 금제 귀걸이뿐만 아니라 은과 청동으로 만든 팔찌, 은제반지 등을 찬 것으로 미뤄 신라에서 가장 상류층 신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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