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아들 녀석과 보는 애니메이션 한 편이 있다. 영화의 속편이 나온 지도 제법 되었지만 마치 의례처럼 매년 여름이면 손이 가는 영화다.
그 영화는 흰동가리라는 물고기가 주인공이다. 디즈니(Disney)와 픽사(Pixar)가 공동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2003)〉의 주인공이 바로 흰동가리다. 왜 열대의 해변하면 바로 떠오르는 산호초나 말미잘, 그 사이를 유유히 노니는 밝은 오렌지색과 하얀 줄무늬로 된 물고기 말이다. 알록달록한 것이 꼭 광대(clown) 같다고 해서 ‘클라운 피쉬’라고도 한단다.
제목처럼 영화는 하루 종일 니모만 찾다가 끝난다. 우연한 실수로 인간에게 잡혀 호주의 어느 치과 병원 수족관에 갇히게 된 니모를 찾아 떠나는 아빠 물고기의 모험을 그린 영화다.
호주 관광청의 후원이라도 있었는지 아빠랑 아들이 극적으로 상봉하는 호주 시드니(Sydney)는 정말이지 멋있게 그려졌다. 영화 한 편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호주를, 시드니의 달링 하버(Darling Harbour)를 찾는다는 것은 영화처럼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닌 게 문제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세계의 꼬마들은 흰동가리에 푹 빠져버렸다고 한다.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세 번 본 아들 녀석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나도 가까운 대형마트에 ‘니모’가 들어왔나 몇 번이고 기웃거린 적이 있다. 몇 년 전 여름으로 기억한다.
영화가 흥행을 하자 애완용 흰동가리리가 덩달아 잘 팔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양식(養殖)으로는 전 세계적인 수요를 감당하지 못 하는 상황에 이르자, 급기야 야생 흰동가리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래서 필리핀인지 어딘지는 클라운 피쉬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보거나 어디 수족관에 있는 녀석들을 보면 된다고 아무리 구슬려도 아들 녀석도 그렇고 그건 올바른 사랑법이 아니란다.
어딜 가나 ‘사랑’이 문제인가 보다. 세속에 사는 평범한 우리는 부처나 예수하고 다르다. 사람은 누구를 사귀며 동시에 또 다른 누구를 사랑할 수는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불행히도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큰일이 난다. 드라마가 진부하지만 중독성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주제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여자만큼 저 여자도 사랑하는 나,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하겠지만, 이 여인과 저 여인은 그 남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원수지간이 된다. 드라마는 이런 삼각 딜레마를 놓치지 않는다. 세속적 사랑은 애초부터 이타심이나 박애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또 그렇게 획득된다. 우리가 하는 사랑은 바로 ‘소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수나 부처는, 표현이 좀 뭐 하지만 이 여자 저 여자를 동시에, 그것도 마음껏 사랑하신다. 설마 두 명 뿐일라고? 온 인류가 사랑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가정 법정에서 부르지 않거나 당사자들끼리도 조용한 건, 적어도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소유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가 흰동가리에게 추파(!)를 던졌으니 니모들은 이제 다 죽었다! 사람이 자기 손가락만한 크기의 열대어를 사랑, 아니 소유하기 시작했다는 게 어째 공포영화 보는 것처럼 오싹하다. 열대어를 멸종시킬 정도로 이미, 그리고 충분히 사랑했으니 이제 눈을 다른 데로 돌릴 게 뻔하니까 말이다.
지금이라도 소유를 기반한 우리의 일방적인 짝사랑, 이거 어떻게 좀 안 될까 싶다. 상대를 없애버릴 정도의 뜨거운 사랑이라면 분명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그래서 ‘거리 두기’를 제안한다. 상대방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은 사각의 링에서만 벌이는 게 아니다.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랑이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태울 뿐이다. 누구는 화끈한 사랑이라지만 뜨거운 건 화들짝 놀란 입천장만큼 마음도 아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랑의 거리가 너무 멀면 냉랭하다. 상대의 따뜻함이 전달되지 않으면 그 공백을 ‘상대는 정말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하고 의심으로 채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사랑은 핑크빛으로 선명해진다. 온 몸이 따뜻해진다. 괜히 히죽거린다. 사랑뿐이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비싼 향수, 사람,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