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편의 설화와 관련하여 선도산 정상 가까이에 ‘성모사(聖母祠)’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이 있다. 성모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祠堂)은 조상 등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말한다. 민간의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부른다. 성모사 건물은 전면 한 칸, 측면 한 칸으로 단출하다.
1976년에 복원된 사당 오른쪽에 ‘성모사중건기적비’가 있다. 비의 왼쪽 면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비의 건립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동도 서편 선도산 산정에 고색창연한 사우(祠宇)가 있으니 즉 신라 성모의 영령을 숭봉 향축하는 사당이다. 이 성모사당은 신라 때 창건된 이래로 고려, 조선을 거쳐서 여러 번 개축 중건하여 왔으나 2천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역성역조의 창상을 겪는 동안 창연한 고색의 퇴락을 면치 못하였더니 대한광복 후 18년 임인에 후손 참봉 재호와 전 참봉 화준이 협의 주선하여 중건하였고, 그 후 갑인(1974년)에 사우의 규모를 넓히기 위한 중건추진위원회를 결성, 재호의 아들 성형, 준형 형제가 비용을 내어 그 해(甲寅) 8월에 기공을 하고 그 다음해(乙卯) 9월에 현재와 같이 준공하였다.”
또 옆면에는 중건추진위원회의 명단, 그리고 뒷면에는 비용을 헌납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박씨 문중에서 박혁거세의 모후인 선도성모를 기려 이 비를 건립한 것이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성모사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아마 선도성모의 위폐를 모시고 있으리라. 매년 음력 삼월 초열흘에 이곳에서 박씨의 며느리 혹은 딸들이 제관이 되어 제향을 올린다고 한다.
왼쪽에는 자연석으로 된 성모사 표지석에 임진왜란 때 신라시조왕의 위폐를 이곳에서 임시로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당 뒤편 암벽에는 언제 새겨졌는지 모르는 ‘성모구기(聖母舊基)’라는 글이 음각돼 있다. 성모사 바로 동쪽에는 재단법인 도덕회수성원(道德會修性院) 건물이 있다. 또 그 옆으로 산신령을 모신 산령각(山靈閣)이 있다. 이곳에는 도교와 불교가 자연스럽게 접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안동 권씨 도생화(道生華) 송덕비가 있는데 ‘단기 4298년 을사. 11월 30일 선도산 수성원 도친 일동(仙道山 修性院 道親 一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으로부터 북동쪽으로 250m정도 떨어진 곳에 성모사 유허비가 있다. 돌로 담장을 쌓고 가운데 비석을 세워두었다. 담장의 규모는 사방 6m에 높이 1.3m이고, 비석 크기는 90×36×19㎝이다. 이 비는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것으로 앞면에는 「聖母祠遺墟碑」, 뒷면에는 「道光十二年壬辰 十月日立」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담장 안은 본래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현재 반듯한 돌을 깔아 깔끔하게 정비를 하였다. 진입로도 보수를 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이 시설을 하는데 시주를 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석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