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진 작가 선배 제현들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이번 사진전을 계기로 그간 찍었던 결과물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돼서 기쁩니다”
선생은 양북면 와읍리에 살고 있는 농부다. 전직 경주시의회 의원(1997년)을 지내기도 했다. 화엽 김정철(74)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생애 첫 사진전을 가지고 있다. 오릉 맞은 편, 신원갤러리(김승유 관장)에서는 오는 8월 23일까지 김정철 선생을 초대해 ‘가랑잎의 영혼’ 사진전을 연다.
선생은 본격적인 사진 입문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사진 대상을 직접 찾아다니는 열정과 적극성은 어떤 프로 작가보다 열심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좋아하는 취미인 사진을 찍어서인지, 선생의 얼굴에는 혈색좋은 활력이 넘쳐난다. 평소 취미로 찍었던 사진을 인화하던 과정에서 신광사진관 김상범 대표에게서 사진전 권유를 받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작품들에는 선생의 순박한 감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포토샵이 전혀 없는, 인공적 트릭이 가미되지 않은 순정한 사진들로서, 문자 그대로인 ‘사진(寫眞)’들을 오랜만에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의도’가 많아 보이는 사진에 비해 전혀 의도가 없어,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사진들인 것.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갤러리 신원에서 사진들의 범람속에, 청량제 같은 결과물들을 선보이고 있는 전시를 보며 여름을 보내는 건 어떨까.
이번 전시에서는 신중하게 선별한 60점 정도를 선보인다. “1년간 3000장 정도의 사진을 찍습니다. 양북에 저 말고도 사진을 즐겨 찍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과 동행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예전부터 즐겨온 등산이나 여행을 다니면서 많이 찍었습니다.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소위 인증샷 같은 거였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던 초기엔 꽃이나 들, 강, 자연화, 야초 등의 사진을 주로 찍었습니다. 어떤 꽃은 개화시기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더라구요. 이번 전시의 주제인 ‘가랑잎의 영혼’은 벌레먹은 잎이 입맥만 남은 모습을 보고 그 이면의 그림자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죽어있는 잎사귀였지만 영혼이 깃들어있는 것이 연상돼 그렇게 정했지요. 가을 장미에 맺혀있는 된이슬(굵고 큰 이슬)의 결정체를 햇살아래 보면서 구슬같은 영롱함을 포착하기도 했고요. 또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현상이 너무 신비로웠습니다”
선생은 그러면서 점차 현상을 더욱 관찰하게 되고 들여다 보게 된 것은 물론, 사진의 무궁무진한 매력에 점점 다가가게 됐다고 한다. 사진작가는 미적 감각은 물론이고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요구된다는 전제 조건에 선생은 충실하게 부합한다.
그의 작품들에는 일반적인 자연 현상을 찍었음에도 기하학적인 표정의 사진들이 자주 보이는 것이 그 방증이다. 피사체 이면의 모습을 찍는, 즉,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른 작가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의외의 발견’이라는 코드가 숨어있다. 그 코드를 살짝 풀어보는 묘한 긴장감도 장치돼 있는 것.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승유 관장은 “창작성있고 작품성이 뛰어난 순수한 작가입니다. 순수한 사진 그 자체의 힘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기계의 도움을 받거나 조작이 없는 순수한 사진들이죠. 포토샵 효과를 통해 치장하고 극대화된 사진이 아니라 가장 솔직해서, 사진다운 사진의 맛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라고 설명했다.
선생은 점차 시각이 다양해지고 시야가 넓어진 것에 대해 “처음엔 주변의 자연현상 등에 주목했으나 천지 만물이 다 대상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 작품 중에 전신주에서 까치의 모습과 떼지어 놀고 있는 서천 둔치에서의 학들도 놓쳐서는 안되는 진귀한 순간이었습니다. 무리를 형성한 시간을 포착한 귀한 시간이었지요. 서천내를 재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고요”라고 했다. 피사체를 보는 시각과 대상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김정철 선생은 노년의 나이지만 매우 젊은 감각의 소유자로서 감각적인 사진들을 즐겨 찍었다.
이제는 흔한 일상도 더욱 관찰하게 됐다는 그는 “어느 한 방향의 피사체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사물을 들여다보는 나름대로의 각도나 방향에 따라 다양하게 찍을 수 있는 것이 사진이더군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선생은 앞으로도 오묘한 사진의 세계에서 유영할 듯 보였다.
김정철 작가는 양북면 와읍리 출생으로 경주중, 경대사대부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월성군 새마을문고 지부장,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1997년 경주시의회 의원, 경북낙농농협조합장, 양북장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북도지사, 법무부장관, 대통령 표창에 빛난다. 현재 계수장학회장을 맡고 있다. 선생은 과수, 축산, 낙농업 등 농촌 활동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봉사하며 선진적으로 실행한 운동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