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산에 산신이 있다고 믿었다. 신체(神體)는 호랑이 또는 신선의 상으로 표현하는데, 사찰 산신각에 모신 산신은 주로 호랑이를 끼고 있는 흰 수염의 노인이다. 그러나 산신에는 아기씨 산신도 있었고 산신 할머니 같은 여성 산신도 많았다. 산신이 여성이었다는 것은 산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모악산, 대모산처럼 산 이름에 ‘어미 모(母)’ 자가 있는 것은 산신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곳 선도산 정상 부근 마애삼존불 바로 옆에는 신라를 대표하는 여성 산신인 선도신모를 모신 ‘성모사(聖母祠)’라는 사당이 있다. 이 신모와 관련하여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다섯 편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첫째 이야기, 선도신모는 중국 황제의 딸이었다. 선도산에 사소(娑蘇)라는 신모가 있는데 사소는 본래 중국 황제의 딸이었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익힌 후 서라벌에 온 후 오랫동안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인 황제가 솔개의 발에 편지를 매달아 날려 보냈다. “솔개가 머무는 곳을 따라가서 집을 짓고 살아라.” 사소가 이 편지를 받고 솔개를 날려 보냈더니 이곳 선도산에 와서 멈추었다. 그래서 이곳에 집을 짓고 지선(地仙)이 되었다. 그 후 이 산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고 했다. ‘鳶’은 ‘솔개 연’이다. 신모가 오랫동안 이 산에 머물면서 나라를 평안하게 도우니 신령스러운 일이 많이 생겼다. 그리하여 신라 때 명산대천에 지내는 제사 중 이곳에서 지내는 제사가 윗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둘째 이야기, 선도신모의 시주로 불전을 수리하다. 제26대 진평왕 때 지혜(智惠)라는 이름의 어진 비구니가 있었다. 안홍사에 살면서 불전을 새로 수리하고자 했으나 형편이 여의치 못했다. 하루는 꿈에 한 선녀가 나타나 위로한 후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선도산 신모이다. 그대가 불전을 수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상하여 황금 10근을 시주하여 돕고자 한다. 그대가 앉은 자리 밑에 금이 있으니 이를 찾아 삼존불을 모시고 벽 위에는 53불*과 6류성중(六類聖衆)**과 여러 천신, 그리고 오악(五岳)***의 신을 그리도록 해라. 그리고 해마다 봄·가을에는 열흘 동안 선남선녀들을 널리 모아서 일체 중생을 위한 점찰법회를 여는 것을 규칙으로 삼아라.” 지혜가 놀라 꿈에서 깨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들어가서 자리 아래에서 황금 160냥을 찾아내어 불전 수리를 마쳤다. 셋째 이야기, 선도신모가 왕의 잃어버린 매를 찾아주다. 제54대 경명왕은 매사냥을 즐겨 자주 이 산에 올랐다. 어느 때인가 왕이 이 산에서 매를 놓았다가 잃어버리고 신모에게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만약에 매를 찾게 되면 벼슬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매가 날아와 상 위에 앉으므로 왕은 신모를 대왕으로 봉하였다. 넷째 이야기, 선도신모가 혁거세를 낳았다. 신모가 처음 이곳 진한 땅에 와서 신성한 아들을 낳아 신라의 처음 임금이 되었으니 바로 박혁거세이다. 혁거세와 알령부인의 유래가 이로부터 시작됐다. 신모가 또 하늘나라의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해서 붉은 색으로 물을 들여 관복을 만들어 그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이로 인해 비로소 그 신비스러운 영험을 알게됐다. 그런데 신모 만든 관복을 남편이 아닌 아들인 혁거세에게 주었다고 해야 이야기가 맞을 것 같다. 또 이야기의 순서도 뒤바뀌었다. 이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 위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야기, 송나라에서 선도신모의 상을 모시고 있었다. 김부식이 사신으로 중국 송나라에 갔다. 궁중 내 제사를 모시는 우신관이라는 곳에 갔더니 여자 신선의 상이 모셔져 있었다. 접대를 맡은 관리가 말했다. “이분은 귀국의 신인데 아시겠습니까? 옛날 중국 황실의 딸이 바다 건너 진한으로 가서 해동의 시조가 되신 아들을 낳았습니다. 황실의 딸은 땅의 신선이 되어 오랫동안 선도산에 살았는데 이것이 그분의 상입니다.” 또, 송나라 사신 왕양(王襄)이 우리 조정에 와서 동신성모(東神聖母)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 제문의 내용이 이러했다. “어진 사람을 낳아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 여기서 어진 사람은 신라의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를 가리킨다. 『삼국유사』 「감통」편에 기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기이」편의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에 의하면 과거세에 53명의 부처가 있었다. 이 53분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곳마다 시방(十方)의 여러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 사중(四重 : 네가지 禁戒를 범한 죄) 오역죄(五逆罪 : 무간 지옥에 떨어진다는 다섯 가지 악행)가 없어지고 깨끗이 된다고 한다. **주존불을 협시하는 여섯 보살, 또는 여섯 분의 성인. ***신라시대 오악은 동은 토함산, 남은 지리산, 서는 계룡산, 북은 태백산, 중앙은 부악으로 오늘날의 팔공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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