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공왈 빈이무첨하고 부이무교면 하여니까? 자왈 가야나 미약빈이락하고 부이호례자야라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자공왈 시에운 여절여차하며 여탁여마라 하니 기사지위여아?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왈 사야는 시가여언시이의로다. 고제왕이지래자로다.
<주석>
諂 : 아첨이다. 곧 비굴한 언어와 태도로써 다른 사람을 받드는 것이다.
驕 : 남을 대하여 오만함이다.
貧而樂 : 安貧樂道이다.
정현이 말했다. 樂이란 도에 뜻하여 가난하여도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음을 말한다.
富而好禮 : 주희가 말했다.
예를 좋아하면 편안히 선에 처하여 이치에 따름을 즐기나니 또한 그 부함을 알지 못한다.
詩 : 詩經을 가리킨다.
如切如磋 如琢如磨 : 시경 위풍(衛風) 기오편(淇奧篇)의 句이다.
절차탁마의 공을 가하지 않으면 능히 그릇이 못 됨을 말하나니 대개 학문의 공을 말한다.
뼈를 다듬는 것을 切, 뿔을 다듬는 것을 磋, 옥을 다듬는 것을 琢, 돌을 다듬는 것을 磨라 한다.
諸 : 之於 이다.
往 : 이미 말한 것
來 : 아직 말하지 않은 것
<해석>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하면서도 예를 즐길 줄 아는 사람만 못하다. 자공이 말하였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여절여차 여탁여마” 라 하는 것이 이런 뜻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구나. 지난 것을 알리면 아직 오지 않은 것도 아는구나.
<묵상>
“切磋琢磨” 라는 말이 이에서 연유되었다. 더욱 갈고 닦는 자기 노력을 말한다. 이렇게 자기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정말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즐길 줄 아는 지경에 다다르리라.
스승과 제자, 그 스승에 그 제자와의 대화. 참으로 아름답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이런 스승을 모셔 보았으면 이런 제자를 길러 보았으면. 그러나 다 지나친 욕심. 내 바탕이 되어야 하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