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마음이 불편하거나 괴로우면 밥이 잘 안 넘어간다. 반면, 추운 겨울에 얼음물 속으로 뛰어드는 군인들을 본 적이 있으리라. 고함 한 번에 군기(軍氣)가 바짝 든 그들은 얼음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육체는 정신과 이어져 있고, 보이지 않는 정신은 육체를 단속한다.
영화관 뒷자리에 앉아 앞을 내려다보면 여기저기 다정히 앉아 영화를 즐기고 있는 커플을 본다. 남자는 여자 목덜미를 감싸고 있고, 여자는 머리를 남자 쪽으로 기댄다. 필자가 볼 땐 여자가 더 아까운데, 어쨌거나 여자가 남자를 더 좋아하나 보다. 저기 저쪽 커플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는지 서로 어색하게 손만 잡고 있다. 하지만 남자의 신발 머리가 앞이 아니라 여자 쪽을 향해 있는 걸 보니 조짐이 좋다. 역시 몸과 마음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설명해 주는 좋은 예다. 그렇다면 자세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마음가짐이 달라질까?
물론이다. 책상에 두 발을 올린 채 깍지 낀 손으로 의자에 몸을 젖혀 앉거나 두 팔로 탁자를 짚고 서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좌중을 내려다보는 행동만으로도 남성호르몬 수치가 올라가더란다. 반대로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거나 마치 면접 중인 지원자마냥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허벅지 위에 놓거나 두 다리를 모았더니 오히려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아졌단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연구팀의 실험으로 분명한 것은, 소위 높은 권력형(high power) 자세는 낮은 권력형(low power)에 비해 남성호르몬 수치는 올라가고 반대로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단 1분 동안만 자세를 취했는데 생리반응은 확실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마음가짐이 유의미하게 바뀌는 게 놀랍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알아서 일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희한한 악수법이 그래서 더 눈여겨볼 만하다. 사실 그는 ‘깨끗한 손 집착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악수와 스킨십을 싫어한다고 한다. 누구나 누르는 엘리베이터 1층 버튼도 누르지 않는다고 미국 신문이 꼬집을 정도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이 되자 상대국 정상의 손을 그야말로 움켜잡고 흔들다 잡아당기다가 또 흔들어댄다. 아주 괴상하지만 의외로 효과적인 악수법을 개발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제일 먼저 달려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마구 흔들리며 춤을 추는 자신의 손을 보며 혀를 내두르는 장면이 세계 언론에 토픽으로 보도될 정도였다. 19초 동안이나 속절없이 흔들린 결과는 분명했다. 트럼프는 공격적인 갑(甲)의 입장으로, 그만큼 일본 정상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을(乙)의 입장으로 정리되어진 소위 ‘악수 외교’다.
이걸 또 유심히 지켜본 한 사람이 더 있다. 바로 프랑스 호의 새로운 선장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다. 미 대통령 트럼프보다 훨씬 젊고 남성호르몬 경쟁(?)에서는 지기 싫었던 프랑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 기회를 잡았다. 아니 만들었다. 미국과 프랑스 정상은 웃으며 손을 잡았지만 이내 얼굴은 굳어졌다. 트럼프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에마뉘엘 마크롱은 본인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항변이라도 하듯 강하게 상대의 손을 쥐었다.
양국 정상회담을 취재하던 백악관 취재 기자는 ‘두 정상은 이를 악물고 경직된 얼굴로 서로의 손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손마디가 하얗게 변했다’고 했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손을 놓으려 하자 마크롱은 다시 한번 트럼프의 손을 세게 잡고 흔들어댔다. 그것도 6초씩이나 말이다. 그 다음 날에는 트럼프가 다시 마크롱의 팔을 당기는 복수를 했다고 하니 참으로 웃기고도 서글픈 서열싸움이다.
영화관에서 본 다정한 커플 이야기가 언제 이렇게 샛길로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 인간은 몸과 마음의 일체 구조라는 거다. 트럼프의 남성성은 필체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마치 본인 이름의 고층빌딩처럼 길쭉하고 빽빽하다. 필체 전문가들은 타인보다 더 위대하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 하고 허영을 과시하는 스타일이라고 분석했다. 몸과 마음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