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야말로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가장 글로벌한 테마로, 전시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이를 확신하게 됐습니다” 정병모(58) 경주대 문화재학과(한국회화사) 교수의 말이다. 지금 미국에선 정 교수가 기획한 책거리 순회전 ‘한국 채색 병풍에 나타난 소유의 힘과 즐거움’이 열리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현대화랑 후원으로 김성림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와 함께 기획해 궁중 책거리 병풍과 민화 책거리 등 3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는 지난해 9~12월 뉴욕 스토니브룩대 찰스왕센터를 시작으로, 지난 11일 두 번째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 전시를 마쳤다. 마지막 세 번째 전시는 전시 중 하이라이트로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메인미술관에서 8월 5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한국의 채색화’ 발간해 큰 반향 일으키고 서울 전시에 이어 미국 순회전 열어 정 교수는 2015년 ‘한국의 채색화’ 3권을 발간했다. 이 책의 발간은 조선조 사대부들이 선호했던 문인화나 수묵화에 비해 채색화를 하대하는 경향에 대해, 채색화는 매우 중요한 전통의 그림이라는 것에 착안해서였다. 민화의 진가를 우리가 오히려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재평가되던 차제에 정 교수는 ‘보물’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궁중회화와 민화의 세계’라는 부제를 달고 ‘한국의 채색화 3권’은 그렇게 탄생됐다. 이 책은 대단한 반향을 이끌어냈다. 이 책 발간으로 지난해 서울예술의전당에서 호평 속에 열린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文字圖)·책거리’전이 열렸고 이어 외무부 국제교류재단에서 해외전시에의 제안이 왔고 이번 미국 순회전의 계기가 된 것이다. “미국 박물관 8곳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6곳에서 답이 왔습니다. 그중 3곳을 골라 최종 결정했고요” 두 번째 캔자스대에선 전시 개막에 앞서 ‘화려한 채색화:조선시대 책거리 병풍’이란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우리 발음대로 ‘책거리’라고 그대로 표기하고 읽어, 책거리 그 자체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도록 전략적으로 사용해 큰 효과를 거뒀다. 정 교수는 저명한 학자들이 키 워드인 ‘책거리’를 고유명사 그대로 거론해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미국전시의 책거리 전시도록은 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진 출판사(SUNY)를 통해 배포돼 외국 일반 독자들도 구입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문화를 세계화하려면 가장 시급한 것은 ‘책’인데, 한국문화에 관한 책이 태부족임을 절감했다는 정 교수는 우리 책도 세계적 유통망을 가진 출판사를 통해 배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거리는 세계적 보편성 가지는 테마로 큰 공감 불러일으켜 미국 현지에서의 관람객 반응은 한마디로 뜨거웠다고 한다. 관람객들은 한국 조선시대 수묵화의 존재만 알고 있다가 채색이 강렬하고 화려한 책거리에서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오리엔테이션’ , ‘아트앤아트올로지’, ‘클리블랜드 아트’ 등 저명한 동양미술 잡지에서 전시평을 앞다퉈 쓰고 전시 소식도 크게 보도하고 있어 ‘뜨거운 반응’을 실감하고 있는 것. 정 교수는 서양인들도 서재에 관한 향수가 있어 낯설지 않은 그림이 책거리라고 하면서 그런면에서 책거리가 매우 보편성을 가지는 테마라는 것이며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아이템이라야 다른 나라에 소개했을 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기물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어 한국적 정서를 만끽할 수 있지요.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채색화에 대해 놀랍니다. 여러 디자이너와 예술가, 건축가들도 전시장을 찾았고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어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책거리의 매력은? “놀라운 구성력과 전통적 오랜 채색의 아름다움이 책가도에 집약돼 표현” 정 교수는 책거리는 우리 민화 중에서도 세계화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아이템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면서 이는 책거리의 문화적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책거리란 책을 비롯해 도자기·문방구 등 여러 기물을 그린 그림이다. 유럽에서 시작한 책가도의 원조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 서재인 스투디올로(studiolo)였고 16세기 유럽 각국에 책과 여러 기물들이 섞여 표현됐다. 17세기 중국에서는 ‘다보각도’ 혹은 ‘다보격도’로 전해지고, 18세기 조선 정조때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매우 화려하고 다양하고 풍성하게 표현된다. 정 교수는 “책거리 열풍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 때 시작됐습니다. 왕이 책거리를 좋아하니까 고관대작이 앞다퉈 집에 들이면서 책거리가 시중에 대유행했죠. 임금부터 백성까지 좋아하고, 궁중 화원부터 이름 없는 민화가들까지 그린 주제가 바로 책거리입니다” 면서 “기본적인 틀은 중국에서 가져 왔지만 한국적으로 변형돼 발전했고 전 국민이 좋아하는 그림이었다는 것이 중국과 다른 점입니다. 책 그림의 풍성한 잔치였지요. 200년 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아주 넓은 계층이 좋아했던 그림이 바로 책거리였습니다. 책을 숭상시하는 책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 예술로 승화시켜 꽃 피운 것이 책가도였지요”라고 설명했다. “책거리는 놀라운 구성력을 가졌습니다. 또, 생활 속에서 우러난 자연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쌓임’의 구성도 새롭게 발견되지요. 전통적 오랜 채색의 아름다움이 책가도에 집약돼 표현되고 있어 우리 본연의 예술적 능력이 한껏 펼쳐져 있는 조그만 공간이 바로 책거리인 셈이죠. 한국의 문화적, 예술적 능력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간결하고 단순한 아름다움, 전통적인 우리의 취향이면서도 서양의 현대적 회화 요소와 상통 조선조 유교적 이데올로기로 ‘변방’으로 밀려 난 민화는 매우 한국적이며 뛰어난 전통을 그림속에 되살려 낸 채색화였다. 궁중에서도 채색화는 의례용으로 전해졌고 궁중채색화와 민화의 채색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매우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현대인의 미술 구매 취향을 보여주는 미술 거래 시장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또, 저명한 해외 저자들의 한국 회화 관련사를 소개하는 최근 서적들에서도 민화를 표지로 하는 경향들이 그렇다. “우리 민화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양식이 민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전통적인 것을 매우 중시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가장 한국적인 민화가 현대 미술과 맞닿아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간결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그것이며, 전통적인 우리의 취향이면서도 평면화시킨 요소들이 서양의 추상회화와 상통하는 것이지요. 앙리 마티스,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 등의 작품에서 보여지듯,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현대적 회화 요소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강렬한 색채와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민화를 디지털화 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 교수는 “민화를 세상에 알리는 작업을 고민하다보니 민화를 디지털화 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삶의 진실한 목소리가 담겨져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요소들이 스토리와 함께 화면으로 표현된다면 민화의 가치가 배가(倍加)될 것이라고 봅니다. 민화뿐만 아니라 우리 경주의 신라문화에도 접목할 수 있을 것입니다”며 미술 중 강한 임팩트를 가진 민화는 강렬한 색채와 다양한 스토리가 있고 이미지로도 호소력이 강해 현대의 디지털과 결합된다면 우리문화를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화를 세계로’...민화에 빠져 해외 박물관 오가며 우리 그림 소개하는 전도사 풍속화를 전공한 정 교수는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다. 문화재청·서울시·국립민속박물관 등의 전문위원 및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동아일보에 ‘민화의 세계’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풍속화’, ‘사계절의 생활풍속’, ‘Korean Art Book-회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등이 있다. 2001년부터 민화에 빠져 해외 박물관을 오가며 우리 그림을 소개하는 전도사가 됐다. 미국 UCLA, 영국 런던대, 중국 하남대 등을 돌며 민화 강연과 전시회를 열었고, 외국 대학 도서관에 책거리와 까치호랑이 등 현대 민화를 기증하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린 책거리 특별전을 보고 책거리의 세계화 가능성을 점쳤다고 했다. “민화를 처음 접할때부터 ‘민화를 세계로’가 저의 기치였습니다. 민화는 너무 무겁지 않고 해학적이며 인간적인 요소를 가지는가 하면, 현대적 요소도 병행돼 있다는 것에 주목한 거죠. 그때부터 우리 민화가 외국에 흩어져 있음을 알고 세계 각국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를 찾아다니며 조사하고 파악했지요. 또한 각국마다 존재하는 민화보다는 우리나라 민화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 세계화를 첫 실현한 것이 이번 미국 전시입니다. 우리 민화를 일본의 우키요에를 능가하는 미술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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