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주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경주에서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 물어보면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황리단길을 말한다. 작년 초부터 내남사거리에서 황남초 네거리까지 약 1km 구간을 사람들은 황리단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 유명해지더니 언제부터인가 경주 황리단길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초 내남사거리 근처 동네 목욕탕이 퓨전음식점으로 바뀌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자 주변에 하나둘씩 빵집과 찻집, 아이스크림 가게,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면서 이 거리는 경주의 명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지금도 낡은 점포들이 새 주인을 만나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퓨전 가게로 탈바꿈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처럼 황리단길이 퓨전음식점과 찻집, 아이스크림 가게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찾는 거리가 되면서 생기 넘치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도 많아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곳을 지켜온 동네주민들의 생각이다. 내남사거리 입구에서 30년 가까이 작은 가게를 운영했던 A씨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정들었던 가게를 접고 시내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황남치안센터 인근에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했던 B씨도 “올해 들어 건물주가 약 25% 정도 임대료를 올렸는데 앞으로도 주변시세에 맞춰서 임대료를 올리겠다고 했다”며 “장사는 예전만 못한테 임대료는 자꾸 올라서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아예 건물주가 현 임차인을 내보내고 자신이 직접 장사를 하겠다며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건물을 고쳐 직접 가게를 운영하면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인근 건물주의 설명이다. 황리단길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변해가자 옛날의 정취를 그리워하는 동네주민들도 적지 않다. 황남동에서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이모(여·61) 씨는 “황리단길이 새로 단장하면서 깨끗해지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동네가 활성화되고 장사가 잘되는 것은 좋은데 수십년간 이곳을 지켜온 식당, 세탁소, 동네슈퍼 등도 임대료가 비싸서 쫓겨나지 않고 그대로 장사를 오래 했으면 좋겠다”며 옛 점포들이 없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로 인해 경주시도 황리단길의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창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건물주와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임차인들을 적극 중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황남동 최모(48) 씨는 “이미 서울 등지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명소가 다시 활력을 잃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면서 “경주시는 이제 태동하기 시작하는 황리단길의 활력을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유지·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좋은 대안을 마련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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