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삼년고개’ 이야기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산골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장에 다녀오다가 삼년고개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곳에서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크게 걱정하다가 결국 병이 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어떤 아이가 그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를 찾아와 말했다.
“그 고개에서 한 번 넘어지면 3년을 산다고 하니 그곳에 가서 더 넘어지세요. 한 번 더 넘어지면 6년을 더 살고, 또 한 번 넘어지면 9년을 더 살게 되는 겁니다.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도 여기에서 굴렀기 때문에 그렇게 장수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그 고개로 가서 여러 번 굴러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실은 동방삭이 장수를 한 것은 서왕모의 선도(仙桃)를 훔쳐 먹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선도는 반도(蟠桃)라고도 하는데 선가(仙家)에서 하늘나라에서 난다고 하는 복숭아다. 이 복숭아는 삼천년에 한 번 꽃이 피고 그 꽃이 핀 후 삼천년 만에 열매가 열리며 그리고 삼천년이 지나야 먹을 수 있다. 그때가 되어도 색깔이 푸른색이라 벽도(碧桃)라고도 한다. 이 과일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선도를 먹은 동박삭이 3천 갑자를 살았다고 하니 그의 수명은 60년에 3천을 곱하면 18만년이 된다. 그 선도가 있는 산이라고 해서 선도산이 된 것이리라.
경주에는 예로부터 세 가지 진기한 보물과 여덟 가지 괴상한 풍경이 있었다. 이를 삼기팔괴(三奇八怪)라고 한다. 그 팔괴 중의 하나가 ‘선도효색(仙桃曉色)’이다. 동틀 무렵 선도산에서 바라본 풍경이 절경이라는 것이다. 여러 차례 이곳 선도산을 찾았지만 새벽에 이 산을 올라가보지 못했다.
그동안 별러 오다가 오늘 드디어 집을 나섰다. 도봉서당 뒤에 주차를 하고 산을 올랐다. 바위구멍[성혈(性穴)]유적 왼편 길로 접어든다. 고창 오씨 제실로 향하는 길이다. 늘 다니던 길이 아니다. 제실 입구까지는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제실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는 오솔길이다. 우거진 수풀을 뚫고 오르는데 이슬로 하반신이 흠씬 젖었다. 옷이 젖은 것은 참을만한데 혹 뱀이 밟히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이 된다. 드디어 정상이다. 그런데 벌써 해가 중천에 있어 ‘효색(曉色)’의 비경을 허락받지 못했다.
선도산은 경주시 서쪽에 있는 높이 390m의 낮은 산이다. 예로부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중요한 산으로 서악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서산, 서술산, 서연산, 서형산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중 서형산은 안강읍의 동쪽에 있는 북형산과의 대칭에서 생긴 이름이다.
이 산에는 선도산 성모가 머물렀다는 전설이 있고, 김유신 장군의 누이동생이 왕비가 된 길몽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선도산 기슭에는 많은 고분과 절터 등이 있다. 동면의 남쪽에는 태종무열왕릉과 그 위로 4기의 고분이 있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으로는 김인문과 김양의 묘가 있다. 무열왕릉의 북동쪽으로는 서악서원이 있고, 북쪽으로는 도봉서당, 서악서원과 도봉서당 사이에는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다.
선도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주위에는 여러 기의 왕릉이 있다.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능묘의 양식이나 위치,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 등으로 미루어 믿을 수 없다. 선도산의 서면으로는 전애공사지와 법흥왕릉이 있고, 산 정상에는 성모사(聖母祠)와 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이 외에도 이 산에는 여러 기이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