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모서리
-김중식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代價)로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
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
날개가 가자는 대로 먼 곳까지 갔다가
석양의 흑점(黑點)에서 클로즈업으로 날아온 새가
기진맥진
빈 몸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해도
아직 떠나지 않은 새의
피안(彼岸)을 노려보는 눈에는
발 밑의 벌레를 놓치는 원시(遠視)의 배고픔쯤
헛것이 보여도
현란한 비상(飛翔)만 보인다.
-현실의 안락과 초월, 그 두 가지 화두
철새떼가 이동하는 철이 되어 야생 오리들이 날아가게 되면 그들이 굽어보는 지역 위로 이상한 물결이 인다. 자극을 받은 집오리들이 커다란 삼각형을 만들어 서툰 날갯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철새떼의 비상이 집오리들의 몸 속에 잔존하고 있는 야성의 흔적을 일깨운다. 벌레와 늪, 그리고 집에 안주하던 딱딱한 머릿 속에서 광활한 대륙과 대양의 지리학이 펼쳐진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시 역시 두 마리의 새가 존재한다. “석양의 흑점에서 클로즈업으로 날아온 새”와 “피안을 노려보는” 새. 앞의 새는 뒤의 새의 롤모델로 존재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지만 꿈이라고도 의지라고도 부를 수 있는 “날개가 가자는 대로 먼 곳까지 갔다가” 마침내 우주의 일부가 되어버린 새. 그가 떨어뜨린 빛의 “금부스러기”는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로” 얻어낸 것이기에 선구적이다. 뒤의 새는 그 고결한 꿈을 동경한다. 피가 끌리는 것이다.
기어코 꿈을 이루어내고, 그의 “현란한 비상”을 동경하는 두 마리의 새는 위험하지만 아름답다. 그 무모한 도전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혁명가들이, 비행사들이, 산악인들이 죽어갔는가. 결국 인류의 역사를 열어간 것은 그 불온한 피를 가진 이들이었다.
현실의 남루와 안락, 그리고 초월은 우리 인생의 두 가지 화두이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먹는 것에 얽매여 사는 새들의 천지인 이 세상에서 이상과 꿈을 추구하는 새의 비상을 본다. 순응주의를 벗고 비상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언제쯤 궤도를 이탈하여 낟알과 벌레를 깔보는 야생의 새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은 늘 먼 곳에 있으나 건사해야 할 식솔들 때문에, 지상의 양식 때문에 “발 밑의 벌레”에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 날개가 “걷기에 거추장스(보들레르,「신천옹」)럽다”고 불평이나 늘어놓고 있지나 않는가? 누군가는 한때 꿈꾸지 않은 자가 있었더냐고 반문한다. 더 솔직해지자. 우리가 길들여진 건 편함과 속물근성 때문이었다고,
비상은 너무 늦었다고는 말하지 말자. 더 이상 골목길에서 뒤뚱거리다가 트럭이 들어오자 황급히 그 무거운 몸뚱이를 들어올려 담장 위로 날아오르는 닭, 마음 속에 잠자는 미지의 것을 짐작도 못 하는 무거운 새는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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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