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우리는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에 접어들면 ‘첨단과학도시 경주’라는 입간판을 마주하였다. 이를 본 방문객은 경주가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관광도시로 여겼는데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의아해하기도 했다. 첨단과학과 관련된 무슨 시설이나 연구소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슬로건을 내 건 밑바닥에는 원자력발전소(원전)를 염두에 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원전이 첨단기술임에는 부인하지 않으나 이것만으로 우리가 첨단과학도시를 표방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흔히 궁합론을 이야기할 때 경주가 가지고 있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 문화는 원전이나 방사능폐기물처리장(방폐장)과 뭔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가지의 상반된 현실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오늘날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8일 자정을 기점으로 고리원전 1호기를 영구 정지시켰다. 그리고 탈 원전을 선포하여 더 이상 원전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전력생산의 32%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효율적인 원전이지만 참으로 반길 일이다. 원전은 인류가 전기 에너지 생산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이의 위험성과 폐해를 가벼이 한 채 장점만 더 내세운 면이 없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경주지진을 계기로 월성원전의 입지 문제와 안정성이 크게 쟁점화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5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30년의 설계수명이 다한 월성원전 1호기의 10년 연장 가동을 결정한바 있고 이를 반대한 소송에서 운영변경 허가처분을 취소한다는 법원의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원안위는 계속 가동을 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1개국에 총 448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며, 한국에는 총 24기가 가동되어 국토 면적당 원전 설비용량이나 원전단지별 밀집도, 그리고 반경 30㎞ 이내 인구수에서 모두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도 5기가 건설 중이고 6기가 만들어질 계획이다. 월성원전 반경 30㎞ 이내 인구수는 약 130만 명으로 6년 전 큰 재앙을 몰고 온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 인구수(약 17만 명)의 약 8배이다.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지만 고장이나 자연재해로 사고가 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큰 피해를 안겨 준다는데 있다. 이미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1979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년)를 통해 효율성과 경제성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는 인식아래 세계는 속속 탈 원전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과 일부 개발도상국을 제외하면 이미 탈 원전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으며, 유럽의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이 탈 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
원전은 30-40년 가동을 위해 건설과 해체까지 100년이란 긴 기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 시대의 편리를 위한다지만 다음 시대의 후손들이 그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 갑작스럽다시피 맞닥뜨린 탈 원전이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앞으로 걷잡을 수 없이 속도를 높여 갈 것이다.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의 확충과 기존 원전도시의 지속 가능한 경제 안정 정책 등 갑론을박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경주는 원래부터 역사문화도시였기에 궁합이 맞지 않았던 부분과 결별한다는 인식아래 장기적인 플랜을 다시 짜야할 것이다. 우선 이미 논의가 되고 있는 월성원전의 명칭부터 바꾸어야 한다. 지역 도시명을 따서 붙인 원전은 4년 전에 이르러 전남의 영광원전은 한빛으로, 경북의 울진원전은 한울로 문패를 바꾸어 달았다. 원전의 나쁜 이미지가 도시의 이미지까지 해친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월성은 신라 궁궐의 명칭으로 행정구역이 경주시과 월성군으로 나누어져 있을 때 원전을 건설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경주시장 공약에도 들어가 있는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조성 기반구축과 한수원 연관기업 및 연구소 유치라는 원전과 관련된 경주시 정책도 장기적인 정부정책에 맞추어 과감하게 방향전환을 모색할 시점이다. 현 정부의 탈 원전 정책의 계속적인 추진과 관계없이 앞으로 원전시설 해체와 폐기에 관련된 산업은 각광을 받을 것이다. 경주는 이러한 미래를 예견하고 몇 해 전부터 원자력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 유치를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해왔다. 먼 훗날에 우리의 후손들이 경주에서 원전 시설과 영원히 이별하는 그날을 위하여 이제부터 시민이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야겠다. 역사문화의 경주로 더욱 빛나는 훗날을 위하여.
우리는 시민 스스로 경주에 방폐장을 유치하고 한전본사까지 두고 있다. 그동안 월성원전은 지역사회에 크나큰 아비지를 하였다. 겉으로 대놓고 비판하면서 뒤로 손을 벌린 시민이나 단체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 원전관련 기관과 시민은 함께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데 힘을 모야야 하겠다. 동반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