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자주 물을 주고는 있지만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속담에 ‘오뉴월 장마에는 돌도 큰다’는데 장마는 커녕 비다운 비가 오지 않으니 돌이 말라 쪼그라든 것 같고 농작물도 바싹 마르고 있으니 이 마음도 타들어간다.
대루탄경(大樓炭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이 세상의 성립과 괴멸(壞滅)에 대해 설하고 있는데, 곡귀겁(穀貴劫)에 이르면 보시하지 않은 인색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비도 내리지 않아 파종하는 씨앗마다 말라죽게 된다는 것이다.
신문을 보고 방송을 들어보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영 아니다. 갈수록 인심이 각박해지고 있다. 곡귀겁에 이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관음보살의 가피가 절실하다.
텔레비전에서는 자외선 지수와 오존 농도가 높으니 주의하라는 당부가 있으나 흐르는 땀을 훔치며 분황사로 관음보살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관세음(觀世音)·광세음(光世音)·관자재(觀自在)보살이라고도 한다. 관음은 이 세상 모든 중생의 온갖 고뇌의 소리를 다 들으시고 관찰하여 아시는 분이다. 대세지보살과 더불어 아미타불을 협시하고 있는 관음보살은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풀어주는 분이라 하여 ‘시무외자(施無畏者)’라고도 하고 대자대비를 본원력으로 하시는 분이기에 ‘대비성자(大悲聖者)’라고도 한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설화가 있는 양양의 낙산사를 비롯하여 금산의 보리암, 강화의 보문사 등을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꼽고 있다.
그런데 신라 때 분황사의 왼쪽 전각 북쪽 벽면에 그려진 천수대비가 5살 아이의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분황사의 계집종이었던 관음보살의 화신이 이 절 이웃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니 분황사야말로 최고의 관음성지가 아닐까?
『삼국유사』 「감통」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문무왕 때 광덕과 엄장이라는 두 스님이 서로 친하게 지내며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다.
“극락세계에 먼저 가는 사람은 꼭 알리도록 하자.”
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에 숨어 살면서 신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해서 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엄장은 남산에 있는 암자에서 화전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어느 날 붉은 빛을 띠며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소나무 그림자가 고요히 사라지는 저녁이었다. 그때 엄장의 암자 창밖에 인기척이 들리며 이런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 극락으로 가네. 자네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도록 하게.”
그 소리를 듣고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보니 구름 위에서 하늘의 노래가 들리고 밝은 빛이 땅으로 뻗치었다.
이튿날 엄장이 광덕의 집으로 가 보니 과연 그는 죽어 있었다. 이에 즉시 광덕의 처와 함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장사를 치른 후 엄장이 광덕의 처에게 말했다.
“이제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소?”
“좋습니다.”
그녀는 주저함이 없이 승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장은 남산의 집으로 가지 않고 죽은 광덕의 집에 머물러 살게 되었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 엄장이 광덕의 처와 잠자리를 함께 하려고 하자 놀란 그녀가 엄장에게 말했다.
“스님께서 서방정토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마치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장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광덕도 이미 이렇게 했을 것인데 왜 안 된다는 말이오?”
그러자 광덕의 아내가 말했다.
“남편은 저와 10년을 살아도 아직 하루 저녁도 한 이불을 쓴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몸을 더럽혔겠습니까? 오로지 매일 밤 몸을 단정히 하고 반듯이 앉아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암송하고 이미 진리를 깨친 뒤에는 밝은 달이 창에 비치면 그 빛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하였습니다. 정성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서방정토에 가지 않으려 해도 어찌 가지 않았겠습니까? 무릇 천 리를 가고자 하는 사람은 첫걸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니 지금 스님의 하는 일로는 극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엄장은 부끄럽고 무안하여 그대로 말없이 물러 나와서 그 길로 원효대사의 처소로 가서 도를 깨칠 수 있는 방법을 간곡하게 청하였다. 원효는 정관법(淨觀法) 즉 더러운 생각을 없애고 깨끗한 몸으로 번뇌를 없애는 방법을 만들어 그를 지도했다. 엄장은 이에 몸을 단정히 하고 전날의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는 오직 한마음으로 도를 닦아 그도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다. 이 광덕의 처가 바로 이 분황사의 계집종인데 관음보살 19응신 중의 한 분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