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박영종 목월은 1916년에 태어나 1978년에 영면하셨다. 고향에서 건천보통학교를 졸업하시고 계성중학교를 다니셨다. 1940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서 ‘길 처럼’을 발표해 등단하셨다. 1946년 동리, 서정주와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하여 청록파로 불리었다. 첫 시집 「산도화」를 간행하고 1962년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셨다. 고향이 소재인 시 2편만 읽어보자.
선도산/ 수정그늘/ 어려 보랏빛// 청주냄새/ 바람을/ 우는 여울을// 주막집/ 뒤뜰에/ 산그늘이 앉는다.//
*선도산은 경주 서쪽에 자리하여 날마다 경주의 해질녘 붉거나 자색의 노을을 이고 있다. 신모 재사장 사소의 전설을 보듬고···,
강나루 건너서/ 밀 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정지용이 이르기를 ‘북에 김소월이 있거니와 남에 박목월이 날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않아 아기 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 민요조에서 시에 진전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크다... 수사를 다분히 걸러내고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조선시다. 이렇게 대시인이 경주에서 탄생된 것이다’
을유 출판사에서 조선청년 문학가 협회가 결성되고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활동했는데 그러던 어느날 출판사에서 박두진을 해우한다.
또한 조지훈이 박목월의 시를 높이 평가하고 목월을 칭찬했다. 이리하여 건천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조지훈이 온다는 시간에 맞춰 자신의 이름이 적힌 깃발을 들고 역에 나갔다. 봄눈이 흩날리는 날 이윽고 기적을 울리며 도착한 기차는 떠나고 처음 지훈과 만난다. 조지훈은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담긴 자작시를 주었다. ‘완화삼’ 시였다.
차운산 바위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 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닢에 젖어/ 술 익는 가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하여/ 달빛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박목월이 쓴 수필집 ‘사랑은 고독한 것에서’는 조지훈과 만남을 회상하며 이 내용을 써 놓았다.
전국에 애창되었던 ‘이별의 노래’ 김성태 작곡.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1915년 태어나 65년간의 생을 이별하실 때까지 목월의 고향은 그리움 속에 있었다. 오늘날 전국의 우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시는 삶과 죽음, 자연과의 교감,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 감동적인 작품의 산실로써 건천역은 목월역으로 이름 지어져 시문화의 특수지역으로 변모하고, 목월과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목월역으로 불리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