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수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문학과 교수(66)는 진정한‘학자’다. 명징한 정신의 소유자로 학문에 대한 집념과 근성은 우리시대 보기 드문 선비의 기상을 가진 사표로 손색없다. 이 교수는 지난 1983년부터 34년간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여러 학문적 업적과 함께 향가연구에 매진해온 이다. 이 교수의 경주에 대한 사랑과 향가에 대한 집요한 연구가 없었다면 신라향가의 문학적 이해는 요원했을 것이다. 이임수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사랑 그 한없는 집착으로부터(나무기획)』시집을 최근 냈다. 이 교수의 정년퇴임식 및 출판기념회는 지난 9일 열린 바 있다. 이 교수의 새 시집 소개는 참으로 가슴 먹먹하다. 이번 시집 말미‘마무리’에서‘2월말 갑자기 대장암 판정을 받아 봄과 함께 누워 삶을 되돌아 보았다’며 밝힌 것처럼 조심스럽게 근황을 알리며 성찰에 다름 아닌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쉽게 쓴 그의 싯구, 행과 연마다에는 진한 페이소스가 깃들어있다. 자신을 가만히 관조하면서 독자들의 가슴을 치는 시어들은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리고 그 페이소스를 뛰어넘는 삶에의 애정과 활기도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그의 시집은 더욱 정서적 호소가 강렬한지 모르겠다. 교수 연구실을 찾은 12일도 책상 가득 시집을 쌓아놓고 일일이 사인을 하고 있었다.‘나누기 위해서’란다. 이 교수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으나 인터뷰를 삼가고 잔잔하게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이 교수의 시집을 소개한다는 고리타분한 형식과 명분은 잠시 접어두고 싶다. 너무나 적확하게 삶을 꿰뚫는 이 교수의 시들을 어찌 짧은 몇 글자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이 교수의 빠른 쾌유를 바라며 대부분의 기사 구성은 이 교수의 시로 대신한다. 이번 시집은 제1부 자화상, 제2부 사랑은 강물처럼, 제3부 바람따라, 제4부 더불어 살며 등 4부로 나눠 총 105편으로 구성됐다. 쓸쓸한, 외로운, 사랑, 가을, 삶, 죽음 등의 시어가 자주 보인다. 이런 시어들을 통해 익숙한 자연과 사랑과 우정,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나즈막히, 읊조리듯 우리에게 충고하고 따뜻하게 조언한다. 시들의 전반에는‘여가 거고 거가 여네’라는 시 제목처럼 암 투병 중인 시인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관조’가 강물처럼 흐른다. 한없는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도 자주 등장한다. ‘나는 꽃피는 봄날이 좋다/ 이 좋은 봄날에도 이별이나 죽음,/ 사랑까지도 항상 짐스러웠다/ 이제 누구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강물 따라 바람 따라 흘러간다./ 덧없는 자유요 해탈이다.//’-들머리 전문. ‘남쪽나라가 그리운지/ 엄마의 약손이 그리운지/ 이마가 차다.// 청춘이 다하고/ 사랑할 힘조차 없어, 이제/ 싸늘한 이성으로만/ 살아가라는 뜻일까?/ 울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오늘은 절정의 가을꽃이다.//’ -‘찬 이마’전문. ‘한 남자가 꽃나무 아래 자고 있다.// (경고장) 이렇게 자다가 생을 마칠 수도 있음.// (묘비명) 영원으로 이어진 봄날 길 떠나다.//’-‘봄꿈’전문. ‘중략...누구에게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 바람처럼/ 떠날 수 있게요. 가끔 쓸쓸할지라도./ 하략.’- ’바람의 노래‘ 중. ‘중략...‘너무 많은 시간들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겠지. 하고 싶은/ 말들도, 가슴 뭉클한 시도, 잔잔히 삶을 되돌아보는 소설도/ 써보고, 바보 그림도 그리고, 제멋대로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해봐야지. 다 못해도 좋고 바람이 되어 떠돌다 어디서 그쳐도/ 할 수 없지, 주어진 운명이 거기까지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함께 나누고 살다 떠나면 그뿐, 솔잎 사이를 빠져나가는 여린/ 바람이면 어떻고 세상을 뒤흔드는 태풍이면 어떠리.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한바탕 바람이요 꿈인 것을!//’ -‘바람의 노래2’중에서. ‘중략...돌이켜보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진 않았기에 부끄럽거나/ 후회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고집과 갈등,/ 밤늦게까지 마신 술들이 몸속에 종양을 이렇게 자라게 했나/ 보다. 암세포들도 내 인생의 일부다. 이제와 어떻게 하겠는가?/ 싸우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수 밖에.//’ -‘암의 원인’ 중에서. ‘중략... 그러나 나는 수술에 의존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살다 떠나고 싶었다. 지금도 항암치료나 해보고 간단한 수술/이면 모르지만 여러 곳에 번졌다면 의술에 의지하고 싶지 않다./ 중략/ 할 수 있는 데까지 치료해보고 자유롭고 싶다. 중략/ 언제까지나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하면서도 더는 집착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은 봄비 소리 들으며 편히 잠들고 싶다.// 떠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지./ 하략.’ -’대장암‘ 중에서 ‘눈이 내리는 날엔/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냥 쉬도록 하십시오/ 삶도 내려놓고.’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모든 직장이 쉬면 어떨까?/ 아니면 일의 속도를 반으로 줄이거나.’ -‘눈 오는 날’전문. ‘그 사람을 만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아름다운 시간만을 기억하는 것.// 그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건/ 아직도 따뜻하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 -‘사랑 5’전문. 이상과 같은 시들에서 이 교수는“내가 아프려고 그랬는지 이번 시집에는 이별과 죽음에 관한 시가 많아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임수 교수는 경주문화축제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5년 세계한글작가대회를 앞두고 『한국의 고대시가 향가』 를 한글과 영어로 묶어 향가를 세계적으로 소개하는데 앞장섰다. 저서로는 『려가연구(麗歌硏究)』 『월명의 삶과 예술』 『향가와 서라벌기행』 『한국 시가문학사』 등이 있고 시집으로 『수유꽃 지더니 하마 산꿩이 울고』 『구름이나 쳐다보는 하느님』 (이사가 시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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