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역은 한 읍내와 읍내를 연결시켜주는, 길을 매어주는 매듭 같은 것이어서 어디까지나 한없이 이어져 있다. 역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있었고 고려때는 더욱 많아져 525역이던 것이 조선시대에는 540역으로 증가되었다. 대동여지도의 혈맥 같은 길도 다 역으로 이어져 있으며 도로와 도로에서 분기된 곳에 위치하며 현 도로망의 형성에 기초가 된 길로서 각 역에는 역장, 역리, 역졸, 역정의 운영과 공역에 종사했다고 한다. 인마나 마차가 머무르는 장소로 여관과 마차가 쉬어가는 곳, 말을 공급받고 통신이 전달되는 수단으로 이용됐으며 길과 길을 연결하여주는 곳이 됐다. 역 주변에는 마을이 있고 마을이 모여 읍을 만들었다. 근세에 이르러 기차가 생기고 열차가 달리는 철로가 생겼으며 처음 달리던 증기기관차에 물과 땔감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역은 철로를 관리하고 시간을 조정하며 화물과 여객의 운반이 활발했다. 김유정역을 가보았다. 춘천역에 못 미쳐있는 유정역의 전 이름은 신남역이였다. 작은 간이역으로 역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표 반납통이 있어도 승객들은 표를 다 지니고 갔다. 유정역이란 기차표가 기념이 됐기 때문이다. 처음 기념관이 설립 될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역 앞 실레마을은 시루를 뜻하는 용어이고 유정의 소설 무대이기도 했다. 실레마을은 거쳐가는 유랑 농민들이 머물다 떠난 곳이었다. 김유정은 춘성군 신남면에 1908년에 태어나서 1937년 영면하시였다.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두어 문명퇴치 운동을 하셨으며 구인회 일원으로 김문집, 이상과 교분을 가지면서 창작활동을 했다. 유정은 고향 실레마을이 작품들의 배경이었으며 가난과 무지와 순박한 마을인들이 등장하며 등은 익살맞고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치는 작품들이었다. 등의 작품들도 실레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정역 앞 식당이나 상가들의 이름은 유정의 작품제목들로 가득찼다. 옛 유정 고택이 지어지고 유정 동상과 유정 기념관에 유정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원래의 집터는 돌담에 에워 쌓인 밭이어서 돌아보고 기와 몇 편을 주워왔다. 실레마을은 유정의 소설세계로 바뀌어 있었다. 유정역으로 바뀐 뒤 작가의 흔적을 찾게 되고 문화 마을이 생겨난 것이다. 건천역은 영천과 경주 사이에 있는 간이역으로 율동, 모량, 아화의 작은 역이었으며 역장과 역원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역에는 승강장이 있어 승객이 오르내렸다. 옛 모습을 추억하면, 측백나무 울타리와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조용한 역의 작은 화단에 핀 맨드라미등과 봉선화, 떼로 나르는 고추잠자리, 주위의 논 들판, 승강장 하얀 나무판자에 쓰인 까만 글자의 이정표. 이정표 기둥 밑에 핀 채송화, 아마도 학생 목월은 이 역을 오르내리며 시상 속에 있었으리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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