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황성공원 충혼탑에는 조국을 위해 희생한 선열을 기리는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곳에 모인 많은 시민들 속에서도 6.25 참전 유공자회 권영세 지회장은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전우들의 모습이 떠올라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연로한 나이로 몸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눈빛만은 전쟁 당시 그 모습 그대로였다. 권 지회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51년 11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해병대 12기인 권 지회장은 진해에서 훈련을 받고 3000여 명의 전우와 함께 전쟁에 나섰다고 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전략적 요충지인 백령도였다.
“당시 우리나라가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황해도에 침투해 전투를 벌이고 다시 연평도로 돌아오는 작전을 벌이고 있었죠. 당시 함께 전쟁에 참여한 전우들이 많았지만 전투 중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함께 생사를 나눈 전우가 쓰러진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죽을 각오로 싸웠어요”
권 지회장은 전투 중 부상으로 치료를 받고 54년 제대를 했다. 그는 6.25 참전 당시 어느 북한 지역 주택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고 한다. 당시의 북한 주민의 삶은 남한의 삶보다 더 호화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황해도에 침투 당시 봤던 어느 집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집의 모습은 감히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북한 주민들의 삶이 남한의 삶보다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북한 주민의 삶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하루빨리 남과 북이 하나가 돼 함께 잘사는 나라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는 현재 젊은이들이 현충일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며 대한민국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미래 세대인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길 바랐다. 그러면서 그는 유공자들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길 소원했다.
“노인들은 최소 한 달 60만원 이상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은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20여 만원 정도를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미 6.25참전 유공자 대부분은 90에 가까운 나이로 죽기 전에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심을 기울여 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