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번만큼은 우리의 선택이 옳았으면 싶다. 새로 뽑은 제 19대 대통령 말이다. 오죽했으면 자동차고 냉장고나 가방이고 간에 좋은 건 죄다 수입하는 판에 왜 정치인은 수입해 오지 않느냐고 한다. 그저 웃고 넘길 농담이 아니다.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 한다면 그럴 능력의 정치인을 외국에서라도 찾아보자니 그만큼 ‘우리나라 좋은 나라’에 목말라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행복할 수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미국이나 독일처럼 소위 선진국이 좋은 나라일까? 아니면 항상 따뜻한 바람이 살랑대고 지천에 과일이 널려 있는 열대 국가가 행복한 나라일까?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부탄(Bhutan)을 꼽는다. 중국의 티베트 고원 바로 밑에 그리고 인도와 네팔의 오른쪽에 자리한 부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분명 아니다. 비바람 많고 높은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해 있으며 무엇보다 GDP가 6천 불 정도밖에 안 되는 부탄은, 엄밀히 말해 국민의 행복을 국가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고 그걸 정말로 실행해 나가는 나라이다.
인구는 75만 명밖에 안되지만 어쩌면 그러니까 선진국에서도 엄두를 못 낼 전면적인 행복 정책을 그것도 다양하고 일관되게 진행한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첫눈이 내리면 일터나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긴다. 멋지다! 모든 공교육과 의료 서비스는 무상으로 제공받는다. 우와, 정말 아름답다!
아이가 만 2살이 될 때까지 근로 시간을 두 시간씩 줄여주는 나라가 부탄이다. 갑자기 우리 처남 생각이 난다. 그 집은 애가 넷인데 아침에 엄마아빠가 회사에 출근할 때 두 놈은 여기에, 한 놈은 저기에 나머지 한 녀석은 저~어기에 맡기는 등 하루하루가 전쟁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부탄은 가난하지만 절대 가난하지 않는 나라고, 무엇보다 국민의 행복이 뭔지 알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나라다.
부탄의 통치 시스템은 좀 독특한데 왕은 군림하지만 직접 통치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헌법에 의해 국왕은 65세 정년(!)이 되면 왕위를 반드시 후계자에게 양위한다. 1907년 통일 왕국을 세운 후 초대 왕으로부터 현재 왕에 이르기까지 부탄에서는 왕위 계승과 관련해 아무런 갈등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는 4대왕에서 5대 왕으로 왕권이 넘어갔던 순간이라는데...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Jigme Singye Wangchuck, 1955~ )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한다. 그는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도자를 뽑는 것은 인민이 자신들의 힘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신념으로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는 부탄의 헌법 초안을 마련했다. 그의 주장은 이역만리 먼 곳의 나에게도 전율이다.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지 않고 머무는 것이 민주화와 분권화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한 왕은, 2006년 불과 51세라는 젊은 나이에 왕좌에서 물러난다. 당시 절대군주제에 익숙했던 부탄 국민들은 4대 왕의 선위와 절대군주제 폐지에 맹렬하게 반대했지만, 오히려 왕이 이렇게 설득하더란다. “미래의 부탄 왕들이 모두 좋은 왕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왕이 내린 결단은 나라를 한 순간에 붕괴시킬 지도 모른다. 국가는 왕보다 중요하다” 라고 말이다.
왕위를 계승한 지금의 5대 왕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2008년에 민주헌법을 제정해 선포한다. 부탄은 혁명이나 전쟁 없이 국왕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한 세상의 첫 나라가 된다.
왕은 백성으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그 백성은 진정 행복할 자격이 있다. 정말 남의 이야기지만 질투가 난다. 왕이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이유가 국민을 위해 뭐 대단한 정책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왕 스스로의 생활이 국민과 똑같이 검박하며 그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기 때문이란다. 정말이지 부럽다. 그런 행복이 우리의 것일 수 없는 이유가 전혀 없기에 더욱 말이다. 부디 이번 정권은 다르기를 바란다. 그 시작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