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증자왈 신종추원이면 민덕귀후의리라.
<주석>
愼終 : 상을 당함에 그 예를 다함이다. 사람의 죽음을 “終”이라 한다.
追遠 : 제사에 그 정성을 다함이다. “遠”은 조상을 가리킨다.
<해석>
증자가 말하였다. 상을 당함에 그 예를 다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냄에 그 정성을 다하면 백성들의 풍속과 도덕이 돈독하고 두터워질 것이다.
<黙想> “愼終追遠”
이는 유가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喪에 예를 다하고 제사에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규정이 없기에 흔히들 허례에 치우치게 된다. 내 어릴 때만 하여도 부모 3년 상 치르고 살림이 거덜 난 집이 많았던 것이다. 이제는 이런 허례는 거의 없어져 다행이다. 도리어 너무 소홀히 함이 문제이다. 이제는 3년 상은커녕 1년 상도 드물고 대개 장례로 끝나거나 혹은 49제로 막음한다. 또 제사도 이젠 밤 0시에 지내는 집이 거의 없고 대개 이른 저녁에 지내며 그 절차도 많이 간소화됐다. 또 4대 까지 지내지 않고 2대로만 한정해 지내는 집이 많다. 나아가서는 아예 기제사를 지내지 않은 집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제사의 순기능을 인정해 제사를 꼭 지내도록 권한다. 그리고 가급적 나도 참여한다. 그러면 그 순기능은 무엇인가? 엄격하게 말해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서가 아니고 살아 있는 자손들을 위해서이다. 자손들이 이를 통해 한 핏줄임을 확인하고 정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제사가 없다면 이런 기능을 할 기회가 많이, 아니 거의 줄어든다. 그러므로 제사를 통해 함께 모여 그 조상을 기리며 한 자손으로서의 정을 두텁게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어디 누가 정말 신령님이 오셔서 제상의 그 음식을 자신다고 믿는가? 비록 형식이야 영신례를 갖추어 혼령을 오시게 하고 이후 잡수시도록 여러 의례를 취하지만 그것 다 그야말로 그런 형식을 갖추는 것이지 정말로 현실적으로 이루어진다고는 믿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천주교에서도 제사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이야 종래의 그 형식이든 혹은 개신교처럼 추도식으로 하던 무엇으로 하던 상관 없다. 그 정신만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자손들, 형제나 종형제들이 모이는 것이다. 모여야 한 자손임을 확인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백성들 사이에 그 덕이 두터워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