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은 역사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명멸을 거듭한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신성한 종교의 이념과 기도의 전당도 다를 바가 없다. 경주 석굴암(石窟庵)도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불타의 거룩한 정신만 겨우 지키고 있다. 사찰의 주인이랄 수 있는 스님들에게 부탁을 드려야 해야 할지, 가르침을 따르는 신도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지, 아니면 문화재의 가치만 내세우는 정부기관에 민원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국보 제24호 ‘경주 석굴암 석굴’은 1995년 불국사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됐다. 불교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아마도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도나 중국에서 유행한 석굴사원의 형태를 보고 따라 만들되 완전히 다른 창작물을 만들듯이 건축 설계와 축조의 기술, 그리고 예술성까지 두루 갖춘 구조물이기에 그렇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최고의 지폐였던 1만원권을 만들면서 앞뒤에 불국사와 석굴암 본존을 넣기로 결정하고 결재까지 마쳤지만 다른 종교계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된 일화가 있을 만큼 가치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위대한 문화유산의 건립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신라 경덕왕 때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건립하고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佛國寺)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태평성대를 누리던 전성기에 당시의 최고 불교 지도자와 건축 기술자, 그리고 예술가, 정치가가 하나가 되어 만든 걸작이다. 신라인들은 새로운 해가 솟아오르는 토함산에 사원을 만들되 왕경인 서라벌 방향의 서쪽 기슭엔 부처의 나라 ‘불국사’를 만들고 동해를 바라보는 정상부에 동향으로 돌로서 만든 최상위의 부처님 전당 ‘석불사’을 만들었다. 현재의 역사는 무수한 과거를 거름으로 삼아 싹을 틔운다. 1240여 년 전에 그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개념까지 감안, 치밀한 계산아래 부처의 깨달음(과거)으로부터 다 같이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나라(현재)를 만들고자 하였다. 문화재청이나 석굴암에서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에는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했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고 하고 있다. 왜, 언제, 무슨 까닭에 ‘석굴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지에 대한 안내는 어느 곳에도 없다. 스님들에게 책임이 있는지 관리기관에 책임이 있는지 꼭 따져보고 싶은 심정이다. 자식을 낳으면 이름을 허투루 짓지 않을뿐더러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작명소에 가서 돈을 들여서까지 정성을 다해 짓는다. 그만큼 이름 세 자에 부모의 바람과 아이의 특징을 평생토록, 아니 영원토록 간직하도록 하고픈 소망이 담겨 있기에 그러하다. 사(寺)는 스님들이 부처를 모시는 집을 가리키며 사찰이라고도 한다. 반면에 암(庵)은 큰절에 딸린 작은 절로 암자의 준말이다. 이렇게 보면 신라인들이 고도의 계획아래 창건한 두 사찰을 우리시대에 하나는 암자로 이름을 둔갑시킨 것이다. 그것도 본래의 뜻인 돌부처님의 강조는 버리고 석굴만 내세운 채. 요즈음 주위를 살펴보면 상가에 단칸짜리 세를 내어서도 ‘○○사’라고 작명하는 시대이다. 그만큼 암자로 남기가 싫다는 뜻이다. 마땅히 제 이름에 대하여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석굴암이라 칭하고 세계유산 등재 기념비며, 일주문에 도배를 하다시피 한 우리를 ‘석불사’의 본존 부처님은 무어라 생각할까? 벌떡 일어나 스님들께 죽비라도 탁 내리쳤으면 속이 시원할 터이다. 석굴 사원의 구조나 조형의 예술성, 그리고 각각의 조각상이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를 아무리 치켜세운들 절의 이름에서 전하고자 한 창건 당시의 뜻을 저버린 마당에 어떻게 깨달음을 구한다고 하겠는가. 다들 하안거(夏安居)에서 뛰쳐나와 현판부터 확 뜯어 고쳤으면 좋겠다. 스님들이 하지 않으면 신도들이 나서고 이도 저도 나서지 않으면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시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절간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문화재청 앞에서 문화제라도 열어서 신라인들이 붙인 처음의 이름, 석불사를 되찾았으면 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