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 상(商)을 가장 천시하던 그 옛날에도 상도(商道)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권의 적폐뿐만 아니라 기업계에 만연한 적폐 역시 도를 넘은 지 오래이다. 정경유착에 의한 부조리는 말 할 것도 없지만 구십 아홉 섬 가진 대기업이 단 한 섬 밖에 없는 소기업의 생존권마저 빼앗으려 들고 중소기업 중에서도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며, 조금만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되면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의 이권을 탈취함에 부끄럼이 없다. 사람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법인체 역시 최소한의 법인격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아이디어나 기술은 훔치거나 빼앗는 것이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오랜 기간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를 공개하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은 아예 없고,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훔치거나 모방하려 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분쟁이 얼마나 많은 지들 잘 모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제반 지적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허라는 제도가 있지만 흔히들 대한민국의 특허는 솜방망이도 못 된다는 말을 한다. 가령, 어느 사람이 죽도록 고생해 어떤 신제품을 개발해 놓았는데 대기업이 슬그머니 모방제품을 따라 내놓을 경우 개인이나 소 기업체에서 대기업을 향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법정싸움을 벌일 수가 있는가이다. 그런가 하면 대기업에서는 전혀 특허가 되지 않을 것 같은 특허를 취득하여, 약소 기업의 영업권을 합법적으로 제한해 버리는 일도 없지 않다. 나는 ‘아이디어룸’이라는 상호의 개인 기업을 수 십 년간이나 운영해오면서 어처구니없는 특허분쟁에도 휘말린 적이 있었지만, 항상 법은 강자의 편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악의적인 권리 침해에 의해 막심한 피해를 입어도, 피해자가 자기가 입은 손해에 대한 정확한 산출근거를 법정에 제시하지 못하면,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각오하고 소송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은 어느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거의 모든 분야에 아주 체계화 되고 관행화 되어,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최소한의 죄의식이라도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악순환 속에서 그야말로 무슨 잠꼬대 같은 상도의(商道義)나 기업윤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멈추어야 하고, 오로지 훔치거나 빼앗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기업들 역시 더는 빼앗거나 훔칠 것이 없어짐에 따라 결국은 한계상황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이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시작된 것이며, 사람의 근육에서 나오는 노동력 착취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을까? 모양도 빛깔도 없고, 무게도 없는 사람의 머리 속,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가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시대,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을 죄다 바보로 만드는 교육에만 매달려 왔을 뿐만 아니라 그런 불합리한 제도교육에 반발하여 스스로 창의력을 키워온 사람들까지 말살해 버리는 우리사회의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소프트웨어 분야이든 하드웨어 분야이든 별로 다르지 않다. 자신의 시간과 여력을 모두 투자한 사람은 항상 쪽박을 차게 되고, 타인의 성과를 쉽게 가로 채 가는 사람들은 늘 대박이다. 우리도 이제는 선진국들처럼 사람이 가진 무형의 아이디어를 재화적 가치로 산출할 수 있는 품셈법을 좀 가져야 할 것이며, 타인의 아이디어를 죄의식도 없이 도용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무거운 징벌적 손해배상이 따라야 기업계의 불공정 적폐가 청산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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