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자하왈 현현역색하며 사부모능갈기력하고 사군능치기신하며 여붕우교에 언이유신이면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수왈미학이라도 오필위지학의니라.
<주석>
子夏 :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자(字)늠 자하이다. 공자의 제자이다.
賢賢易色 : 위의 “賢”자는 동사로서 존중의 뜻이고, 아래의 “賢”자는 명사로 현인 (賢人)을 가리킨다.
주희(朱熹)는 “어진 사람 존중하기를 색을 좋아하는 마음처럼 하라”고 하였다.
혹자는 아내의 어짊을 중시하고 자색을 중시하지 말라고 했다.
竭 : 다함이다.
致其身 : 그 몸을 맡김이다. 직분에 몸을 주는 것을 말한다. 치(致)는 위(委)와 같다.
<해석>
자하가 말하였다. 현인을 존중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라. 부모를 섬김에는 능히 그 힘을 다하고 임금을 섬김에는 그 몸을 내어주고 벗과 사귐에는 말에 신실함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못 배웠다고 하더 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할 것이다.
<黙想> “현현역색하라” 옛날이나 오늘이나 남자는 다 미녀를 좋아하였다. 그 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현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게 어디 그리 쉽게 되랴? 하지만 남자가 여색에 빠지면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이 또한 고금에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여색에 빠지는 마음을 현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여색을 조심하라는 것보다 현자를 존중하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존경할 현인이 적다는 것이다. 현인인 줄 알고 존경하였는데 어느 날 보니 아니더라는 것이다. 비극인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서도 참으로 존경을 받을 분들,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분들이 어느 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있어 실망을 넘어 분노케 한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인에 대한 눈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완전한 현인을 찾지 말고 일부분이라도 나보다 나은 부분이 보이면 그 면에서만 현인으로 보고 대접하자는 것이다. 이광수의 문학적 업적, 최남선의 학문만은 내 존경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승만도 박정희도 다 많은 부분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모를 섬김에 그 힘을 다하고 임금을 섬김에 그 몸을 맡긴다는 말은 기본이라 달리 덧붙일 말이 없고 다음 벗을 사귐에 말에 신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깊이 음미하여 볼 것이다. 오늘의 벗은 이해타산의 사귐이 많아 그 말에 이런 신실함이 적은 것이다. 했던 말도 불리하면 자기 좋은 대로 바꾸는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말을 이현령비현령으로 하는 것이다. 애초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건 다 참다운 벗의 도리는 아닌 것이다.
끝으로 이렇게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못 배웠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고 하였다. 여기서 자하가 말하는 배움이란 곧 책을 통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을 닦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본이 된 사람은 배운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음미하여 보다 문득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도 한국의 영천, 조그만 농촌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이다. 그는 소학교를 겨우 마치었다. 서당에도 못 다녔다. 그 시대로서도 무식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청년시절부터 온 마을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홀로 계신 어머님을 어려서부터 정성껏 모시었고 마을 일에는 솔선하여 나서서 도왔고 자녀를 예의 바르게 잘 길렀다. 그리고 모든 일에 성실하였다. 비록 가난하지만 탓하지 않았고 또 기도 죽지 않았다. 이런 탓에 젊어서부터 존경을 받은 것이다. 나보다 서너 살 아래지만 나도 그 앞에선 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지금까지 참으로 존경하여 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비록 학벌은 없다지만 석사 박사라고 하는 나보다 더 배웠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