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경주의 뒷골목 풍경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저 길을 걸어왔듯이 나이 먹은 내가 또 그 길을 걷고, 그 골목엔 떠난 이도 있고 아직 계시는 분도 있었으니까요”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했는가. 사진 속 빈티지한 감성이 묻어나는 황남동을 비롯한 골목 어귀 곳곳에선, 유년의 추억과 우리들의 고단했던 성장통이 깊숙이 소환된다. 사진전을 여는 주인공은 박 태 화가(53)다. 박 작가는 회화 외에 첫 사진전을 가진다. 오는 6월 30일까지 ‘갤러리 1078’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오래되고 낡은 것의 풍경, 때로는 비밀의 화원 같은 골목의 풍경이 모두 18점으로 간추려졌다. 경주출신의 박 작가는 요정 시리즈와 인상적인 풍경화로 미국 현대 미술계에 입성한 한국 작가다. 20여 년간 미국 예술 주류 사회에서도 한국인으로 우뚝 서서 작품활동을 하던 박 작가는 4년여 전 고향 경주로 돌아왔다. 물론, 현재도 미국에 있는 갤러리들에서 전속 화가로 활동하며 개인전과 그룹전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작가 자신도 요정을 닮았다. 화가의 아련한 눈빛은 작게 흔들리며 끊임없이 흥미로운 사람들과 풍경을 찾는 듯하다. 한편, 박 태 작가가 운영하는 작지만 강한 갤러리가 최근 문을 열었다. 바로 소울재즈 선율이 흐르는 ‘갤러리 1078’이 그것인데, 갤러리 1078은 최근 경주의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일명 황리단길(황남동)에 위치해있다. 박 작가는 유년과 성장기를 보냈던 경주의 골목골목이 많은 부분 아직 그대로 있는 것에 주목했다. 칠이 벗겨진 채, 오래된 담장이나 집의 뒷모습과 골목의 뒷모습은 우리를 먹먹하고 애잔하게 한다. 곧 사라질,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스러운 시각을 고스란히 피사체에 투영했다. 그들을 애정어리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돼 바라보는 뒷모습의 피사체들을 집중적으로 담아내려했어요. 그 속에 남아있을 추억들을 내가 보고 싶은대로 카메라에 담았구요. 골목을 통해 추억 여행을 한 것 이라고나 할까요? 사라지고 지금은 보기 드문, 잃어버리기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던거죠” “한편, 낡고 방치되고 부셔져가는 것을 찍다보니 흑백의 다큐멘터리 같은 기록물 같아 보이는 함정이 드러났어요. 그래서 환상적이고 다소 동화적인 색감을 가미해 낡은 것에 몽환적 요소를 가미했어요”라고 했다. 색을 입혀 삭막함을 보완하고 온기를 입힌 것이다. 한편 박 작가는 문턱을 낮춘 갤러리 1078을 열었는데 “한국은 갤러리에 가는 것을 문화의 척도로 가늠하는 성향이 있어요. 그런 인식 자체가 아직 갤러리의 문턱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고요. 갤러리 1078처럼 아주 작은 갤러리를 열어 동네 주민들도 수시로 들락날락 하면서 구멍가게 드나들듯이 편한 갤러리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박제된 갤러리가 아닌 ‘쓰윽’ 쉽게 접할 수 있는 갤러리공간으로 말이죠” 라며 예술작품보다 분위기에 주눅드는 공간이 아닌, 경주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형태의 갤러리를 열었다. “화가는 사진을 모르면 작품이 되지 않을 정도예요. 제게 사진은 내가 뽑고 싶은 감성의 찰나를 바로 ‘얼려 버리는’ 작업이죠. 작가로서 사진전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많은 사진 자료가 쌓여 있었어요. 이번 사진전은 내고향 경주에서 내가 기억하는 뒷골목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기에는 다소 부족해서 기록하는 측면이 있어요. 내게 꿈을 키워주었던 어릴적 고향에의 기억들에 고마움을 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며 사진전을 여는 계기에 대해 말했다. 박 태 화가는 조심스럽게 내년에 고향 경주에서도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 태 작가는 성신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카데미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Portrait Society of America 인터내셔날 대회에서 1등을 비롯해 2005년 The Halpert 비엔날레 2위, 2007년 인터내셔날 ARC 살롱전 Staff상, 2008년 인터내셔날 살롱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플로리다에 있는 어디슨 갤러리(Addison Gallery), 페블비치에 있는 뉴 매스터즈 갤러리(New Masters Gallery) 등 미국에 있는 갤러리에서 전속 화가로 활동하며 개인전과 그룹전을 하고 있다. 2012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있는 Academy of Art University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실기와 이론을 가르쳤다. 2009 년 그림에세이 ‘다 잊으니 꽃이 핀다(글로세움 출판)’을 펴내 따뜻한 그림과 이야기로 자신의 유년 시절과 미술 인생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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