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而時
자왈 도천승지국에 경사이신하며 절용이애인하고 사민이시니라.
<주석>
道 : 도(導 이끌다)와 같다. 치리(治理)요, 영도(領導)이다.
千乘之國 : 능히 병거 천 승을 낼 수 있으니 당시로서는 대국이다.
乘 : 병거이다.
敬事 : 政事에 능히 근신하며 전일(專一)함이다. 일을 함에 태도가 진실히 책임을 다함을 가리킨다.
使民而時 : 백성을 부림에 마땅히 농한기를 이용함으로 그 경작(耕作)을 방해하지 않음이다.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병거 천 승을 낼 수 있는 큰 나라를 영도함에는 정사를 처리함에 근신 전일하여야 하여 백성에게 신임을 얻어야 하며 국가 재정을 절약하여 인민을 애호하여야 하고 백성을 부림에는 농한기를 이용하여야 한다.
<黙想> 마땅한 말씀이다. 그런데 왜 굳이 “천승지국”이라고 하였을까? 작은 나라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된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이렇게만 하면 천승지국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국 중국이나 소국인 한국도 마찬가지. 그 역사를 보면 이런 왕조가 그리 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진시황의 무덤을 보라. 어디 “절용애인”이 있으며 “사민이시”가 있었던가? 규모가 좀 작긴 하지만 한국 역시 비슷하였다.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집권자에게 백성은 노예일 뿐이었다. 노예는 주인이 사고팔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짐승과 같았다. 그런 때에 백성을 의식하고 정사를 처리한다면 그는 훌륭한 군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도 크게 다르진 않다. 백성을 오로지 착취의 대상으로만 아는 지배층이 많은 것이다.
6.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凡愛衆而親仁 行有餘力則以學文
자왈 제자입즉효하고 출즉제하며 근이신하고 범애중이하되 친인이니 행유여력이면 즉이학문이니라.
<주석>
弟子 : 남의 동생이나 아들을 말한다. 후생과 후배를 가리키며 문인<門人>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文 : 옛날의 유문(遺文)으로서 시(詩) 서(書) 육례(六禮)의 글을 가리킨다.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청년이 집에 있으면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여야 하고 문을 나서면 마땅히 선배를 공경하여야 하며 말과 행동은 마땅히 근신(勤愼) 신실(信實)하여야 하고 널리 뭇 사람을 사랑하여야 하되 덕이 있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이와 같이 몸소 실천하고 여력이 있으면 시, 서, 육례를 다시 학습할 것이다.
<黙想> 孝와 悌는 유교의 가장 중요한 한결같은 덕목이다. 공자도 그 제자도 이를 강조함에 정력을 쏟았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특히 효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내가 불효하였기 때문이다. 어찌 그렇게도 불효하였을까? 생각만 하여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이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대신 누구에겐가 효도하려 해도 숙부 숙모마저 다 돌아가셨다. 나아가 종숙부님들도 다 가셨다. 외가에도 아무도 안 계신다. 정말 정철의 시조가 생각난다.
어버이 살으실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효”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고 다음 “제”에 대해서는 앞 유자의 말에서 다 말하였으므로 이제 다음 문장으로 가 보자. “汎愛衆하되 親仁” 이라 하셨다. 이 뜻은 다분히 “친인”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어진 이(賢人)에게 더 친근히 지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진 이를 보는 눈이 문제인 것이다. 분명 어진 이로 알고 친근히 하였는데 지나다 보니 그는 양의 탈을 쓴 이리인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전에도 말하였지만 나도 이런 경험을 더러 하였으므로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끝으로 “學文”을 보자. 행유여력이면 학문하라고 하셨는데 주석에 보면 “文”은 옛날부터 있어온 글로써 시, 서, 육례 등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그때까지의 고전인 셈이다. 그런데 언제 “효”와 “제”, 그리고 “친인”까지 다하고 그리고서 남은 힘이 있겠는가? 초인이 아니고선 안 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學文”에 임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수업에는 소홀히 하면서 “學文”에만 정력을 쏟는 얼치기 지성인들에 대한 경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