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은 부처님오신 날이다. 사찰마다 연등이 화려하다. 불기는 부처님이 입멸하신 날을 기점으로 하는데 올해가 2561년이다. 이 땅에 사셨던 80년을 더하면 지금으로부터 2641년 전 부처님은 이 땅에 오셨다.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사방을 일곱 걸음 걸은 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천상계와 인간세계를 통 털어 내가 가장 존귀하다는 것이다. 아주 오만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나’는 불성(佛性)을 지닌 중생을 가리킨다. 따라서 모두가 존귀한 존재라고 선언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온 세상에 괴로움이 가득하니,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겠다는 위대한 서원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후보자 모두가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분황사 모전석탑 기단 위 네 모퉁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가 각각 한 마리씩 있다. 서편의 두 마리는 등을 세우고 앉아 있는데 반하여 동편의 두 마리는 엎드린 자세여서 대조가 된다.
문화재청에서는 서쪽 두 구의 사자는 수컷, 동쪽의 두 구는 암컷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오른쪽 형상은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물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동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왜구의 침입을 막아낸다는 의미에서 바다 동물인 물개를 배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그 사실을 알고 다리를 잘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물개가 아닌 암사자임이 분명하다.
특히 북동쪽에 있는 돌사자의 파손이 심했는데 분황사의 의뢰로 1996년 2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남동쪽에 있는 것을 모델로 해서 새로운 석재를 보강해 좌대와 다리를 복원했다.
1915년 수리 이전에는 기단 위에 6구의 석사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자상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석탑을 보수하면서 4구는 기단의 모서리에 각각 배치하고, 나머지 2구는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에 한 구가 전시되어 있다.
석탑에 사자상이 배치되어 있는 예로는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보물 제188호)이 있다. 기단 윗면에 4마리의 사자상이 있었는데 2구는 1940년에 분실되고 남은 2구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 불국사 다보탑에도 4마리의 사자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1구만 남아있다.
그런데 분황사 모전석탑 주위의 이 사자들은 탑과 함께 조성된 것이 아니고 인근의 왕릉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즉 수사자상은 북천 건너편에 있는 헌덕왕릉의 것을 옮겨 왔다는 것이다.
1층 네 면에는 입구가 열려 있는 감실(龕室)을 만들고 입구 양쪽에 금강역사상을 세웠는데 한쪽은 입을 벌린 아금강역사[密迹金剛], 맞은편은 입을 다문 훔금강역사[那羅延金剛]인데, 옷 무늬가 각기 다르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답게 근육이 꿈틀대는 것 같다. 이 금강역사상이 석굴암 금강역사상과 함께 바로 태권도의 시원(始原) 자세라 하여 경주를 태권도의 본향(本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동경잡기』에 의하면 이 탑은 처음 9층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허물어지고, 그 뒤 분황사의 어리석은 중[愚僧]이 이를 개축하려다 또 허물어뜨렸다고 한다. 이 때 한 개의 구슬을 얻었는데 모양이 바둑알 같고 빛이 수정과 같은데 촛불을 갖다 대면 밖이 훤히 보이고 해가 비치는 곳에 두고 솜을 가까이 하면 불이 붙어 화주(火珠)라고 했다는데 돋보기인 듯하다. 이 구슬은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백률사에 보관했다고 한다.
1915년 이 탑을 수리 복원할 당시 2층과 3층 사이 석함(石函)속에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각종 옥류와 패류, 금은제 바늘과 침통, 가위, 수정 향유병 등과 함께 북송 때의 화폐인 숭녕중보(崇寧重寶, 1102-1106년)와 북제 때의 상평오수(常平五銖, 550-577년) 등이 출토되어 이 탑이 고려 숙종 또는 예종 때 크게 수리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여인의 사용품인 금 바늘, 은 바늘, 바늘통, 가위 등은 선덕여왕의 쓰던 것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 가운데 패류는 류큐(琉球)산으로 이 탑을 중수할 당시 류큐와의 교류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류큐는 현재의 오키나와이다. 기록에 의하면 류큐국은 1389년에 고려와 통교를 시작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류큐국이 조선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모전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