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하나니 위인모이불충호아? 여붕우교이불신호아? 전불습호아?
<주석>
曾子 : 이름은 參이요 공자의 제자이다.
三省吾身 : 여러 번 자기를 살핌이다. 三省의 三은 여러 번이라는 뜻이다.
忠 : 자기의 마음과 힘을 다함이다.
信 : 성실(誠實) 신용(信用)이다.
傳 : 스승에게서 받아 남에게 줌을 말한다. 또 일설(一說)에는 전(傳)을 전(專)으로 보아 전업(專業)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習 : 온습(溫習), 복습(復習)이다.
<해석>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매일 여러 번 자아를 반성한다. 남과 일을 도모함에 마음을 다하지 않음은 없는가? 벗과 사귐에 신실하지 않음은 없는가? 스승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익히지 않음은 없는가?
<黙想> 끊임없이 자아를 수양하는 자세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자아를 반성하여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傳不習乎”의 해석에서 “不習을 傳하였는가?” 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전해 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았는가? 로 해석하려면 문맥으로 보아 傳而不習乎? 라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러면 앞의 “謀而不忠乎”와 交而不信乎와 박자와 호흡이 맞고 이해하기도 좋을 것인데 굳이 “而”를 빼고 그냥 “傳不習乎”라고 한 것을 보면 “不習을 傳하였는가?”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굳이 스승에게서 전해 받은 것을 잘 복습하였는가? 로 해석함에는 주자의 입김이 드세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주자와 달리 불습을 전하였는가? 로 해석하여 놓고 보니 내가 저지른 실수가 기억난다. 한 두 번이 아니지만 한 가지만 소개한다.
처음 대학 강단에 섰을 때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을 강독하는데 문장이 쉬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전날 바둑 대회가 있어 늦게까지 놀다 바로 강의실로 간 것이다. 그래 그야말로 “不習”인 채로 그냥 선 것이다. 그런데 강독 중 <김유신전>에 이런 말이 나왔다. “而國有底事乎” 앞 뒤 문맥으로 보아 “而”가 접속사도 되겠고 또는 “너”란 뜻으로도 해석이 될 것 같아 별 어려움은 없는데 문제는 “底事”였다. 古文에는 이런 말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만 딱 막히는 것이다. 당황할 수밖에. 그러나 백전노장이라 태연스럽게 “이 저사가 무어냐?” 도리어 학생에게 물었더니 교수가 모르는 걸 학생이야 물론 알 턱이 없지. “저사가 무얼까?” 혼자 중얼거리다 “저가 밑이라는 뜻이니 아마 안 좋은 일이라고 봄이 어떨까? 그러면 너희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느냐?” 고 해석하면 될 것 같다고 하고 다시 알아보고 다음 시간에 알려주겠다고 넘어갔다. 그러나 등에는 땀이 났다.
“傳不習乎아?” 정말 우리 같은 선생은 꼭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