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나 형식, 틀의 제약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출판물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틈틈이 습작해 온 작품으로 책을 내는 일을 일컬어 ‘독립 출판물’ 시대라고 한다. 글쓰기, 제작부터 인쇄 출판까지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이 작업은 소장가치가 있는 한정판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은 그들 출판물을 원한다. 새로운 형식의 출판 시장이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경주에도 두 곳의 독립 출판 책방이 생겨 최근의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괜찮타, 그쟈’로 3쇄까지 찍은 경주청년 이학준(28) 작가도 소위 ‘독립출판 작가’다. 그는 전국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글을 쓰고 있는 인기 작가중 한 명이다. 며칠전 독립출판작가로서 창원에서 북토크를 통해 작가와의 시간을 가지면서 독자와 소통하고 온 작가를 오릉의 한 갤러리 카페에서 만났다. ‘작가’라고 직감할 수 있는 음성과 언어표현, 깊은 눈빛에는 문학도의 가능성이 바로미터로 가늠됐다.
‘바람은 별 뜻도 없이 부는데 강은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려 물결을 낸다. 연약하면 수고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세상 이치 같아서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중략/ ....학창 시절엔 누구라도 감추고 싶은게 있다. 나는 유독 그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흔들거렸다. 그래서 일부러 교복 바지 단을 줄여서 다녔고 머리엔 염색물을 들였다가 뺏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고 육지처럼 무뚝뚝해지는 줄 알았다. ...중략/... 그토록 바라던 대로 지금 아버지는 방앗간을 그만두셨고 저 강이 알려오듯 내 속에는 굳은살이 앉았다’ -은사(恩師) 중에서.
호흡이 짧고 명료한 문장에는 재기발랄하고 기지가 넘치는 에스프리가 빛난다. 단문으로 경쾌한 글에는 기성의 작가들과와는 다른 신선함이 넘친다. 책을 다 읽을 즈음이면 그윽한 차 한 잔을 마신 것 같은 위안을 함께 얻는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타고난 문재를 타고났음을 직감한다. 현상을 어루만지는듯한 따뜻한 시각은 때론 나른하기도 하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문장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것에의 예민한 관찰력을 수반한 그의 글은 우리 누구나에게 있는 열외적인 ‘루저’적 일상을 세밀하게 건드린다. 때로는 작가가 원하든, 원치 않든 메시지를 ‘툭’ 던지기도 하고 다시 곱씹어 읽게하는 힘을 가진 문장으로 채워졌다.
이학준 작가는 “기존의 출판물과 독립(인디) 출판물 작가라는 경계가 허물어졌으면 합니다. 글보다 마케팅이 우선되는 현행 출판 시스템이 허물어지면 굳이 일반 출판과 독립출판을 경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젊은 작가들, 인디 작가들이라고 국한짓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굳이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는 거죠”라며 첫 일성을 뗐다.
그는 첫 문장에 집중한다. 모든 것이 담겨있는 첫 문장을 쓸때 가장 오래 걸린다는 작가는 첫 문장 못지않은 다음 문장이 나와야 되고 다음문장 또 그 다음 문장을 정성들여 쓴다고 했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그의 대학에서의 전공은 역사와 국문학이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았어요. 습작을 즐겼습니다” 경주출생인 그는 글도 잘 쓰고 밝았던 중학생이었으나 포항 한 고등학교에 진학, 오로지 입시 경쟁속에 줄 세우기만 했던 ‘특반이면서 미안한 학생’으로 지내며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보낸다. 부산의 한 대학에 진학했고 본능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휴학을 하고 서울에 잠시 머물기도 했으나 다시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경주로 왔고 부친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으나 흥미를 잃는다.
“그때 경주는 위로로 다가왔어요. 강도 위로해주고 산도 위로해 주었죠. 당연히 공무원 시험엔 낙방이었죠. 복학을 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 자동차 디자인에 매료되었고 디자인과 수업을 듣고 적성에 맞다는 판단아래 시험을 쳤지만 준비 기간이 워낙 짧아 떨어졌습니다”
이에 국문학과 수업으로 역사학과 함께 복수 전공을 했다. 졸업 후 이 작가의 블로그 글을 싣자는 어느 잡지사의 제안으로 다시 상경했으나 한 번의 기고로 끝난다. 그러던 어느날 유명한 일러스터의 권유로 책 몇 권을 찍었고 이 책을 본 한 디자이너가 직접, 일하던 카페로 찾아왔고 그 중 책을 접했던 이가 작가를 도왔다. ‘볼품없는 책’을 팔 수 있는 공간과 루트가 서울에 있었던 것이다.
이 작가는 앞으로 ‘괜찮타, 그쟈 2’를 준비중이다. “집에서도 처음에는 달가워하진 않았으나 최근 부모님도 인정할만한 결과물들이 나와서 호응해 주십니다. 급하게 가지 않고 천천히 갈 것입니다”
전국적인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에겐 독자들의 반응이 SNS를 통해 전해온다. “정말 좋아해주는 이들도 많죠. 전국 책방마다 제 책을 파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몇 몇 책방에 두는 것을 선호합니다”
정식으로 문단 데뷔도 생각해 봤다는 그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과정으로서의 데뷔를 고심하고 있었다.
“제 글은 어떤 형식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문단을 나누는 형식적인 측면은 느낌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눕니다. 띄우는 것은 하나의 쉼표입니다. 띄우지 않고도 자연스럽고 쉽게 읽히는 것이 제 바람이죠(웃음). 정말 좋은 구절은 자연스레 띄우게 되고요.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제가 쓰고 싶은대로 쓸 뿐입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것입니다”
작가이면서 다소간의 난독증이 있다는 그는 음악도 무척 좋아한다. 작사, 작곡을 비롯해 기악도 다뤄보고 싶단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에서 예술성을 느끼는 것처럼 저도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을 쓰게 된 것은 솔직해져야겠다는 발로에서였습니다. 밝히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도구로 해서 솔직해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끄러웠던 일들이 아무렇지않게 괜찮아졌고 그래서 ‘괜찮타, 그쟈’로 출판하게 된 배경이 됐습니다” “그래서 글이 참 고마워요. 좀 더 솔직해지는 저를 느끼니까요”라면서 출판 배경을 설명했다.
경주를 삶의 터전으로 삼겠다는 이 작가는 경주 이야기도 지속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사학도 출신이어선지 경주가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고. 경주의 가치에 운을 뜨고 있는 요즈음이라고 그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