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경찰서 부지 및 건물을 매입해 경주문화원을 이전하려던 경주시의 계획이 일단 무산됐다. 경주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는 지난 11일 제222회 임시회 상임위 회의에서 경주시가 상정한 경주문화원 이전 관련 2017년 제3차 경주시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을 ‘보류’했다.
일주일 사이 문화원 건물을 신축에서 리모델링으로 계획을 급변경했고, 매입 후 활용방안과 도심상권 활성화 대책 부재 등 경주시가 졸속행정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날 문화행정위 회의 직전까지도 의원들은 부지 매입을 위한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을 가결한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경주시가 경찰서 이전 후 향후 활용방안 등은 다시 수립해 제출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개회 이후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경주시가 137억원을 들여 경주경찰서 부지를 매입하고 경주문화원 이전을 추진하는 진정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면서 회의 직전과는 사뭇 다른 기류로 변했다.
또 수년 전부터 경주경찰서 이전이 본격 거론됐는데도 불구하고 이전 후 활용방안에 대해 경주시가 아무런 대책조차 수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지난해 시행한 경주문화원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 역시 방향을 잘못 잡아 예산만 낭비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덕규 의원은 경찰서 부지는 기획재정부 소유이고, 관리기관은 행정자치부로 매각과 신축 등은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인데 경주시가 이를 맡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질의했다.
최 의원은 “많은 시민들은 이전은 경찰서가 하는 것인데 경주시가 부지를 매입해 결과적으로 도심상권을 위축시키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시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경주시의 계획을 설명해야 한다”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용역결과 경찰서 부지가 현재 문화원과 가깝고 또 성격상 읍성 복원과 연계되고, 고도제한 등 종합적 검토 결과 문화원 부지로 적합하다고 결론났다”면서 “결과에 따라 경찰이 경주시에 경찰서부지 매입 협조요청이 와서 추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경주시는 지난해 2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사)경북정책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한 결과 문화원 이전 부지로 경주경찰서 부지를 제1순위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당초 용역을 시작할 때 경주문화원 이전 부지로 경찰서 부지를 전제로 하지 않았지만, 후보지를 검토하다 경찰서 이전 계획이 있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 그러나 이날 문화행정위 심의에서 의원들은 용역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영희 의원은 “문화원 이전만 보면 6곳 후보지 중 부지매입비가 가장 많은 경주경찰서 부지를 1순위로 제시할 이유가 없다”면서 “용역을 주려면 경찰서 이전에 따른 도심의 영향 또는 그에 걸 맞는 대안에 대한 용역이 필요한 것이지 경찰서 부지를 전제로 한 용역은 처음부터 계획이 잘못됐다”고 질타했다.
김 의원은 또 “경찰서는 노후되고, 비좁아 민원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어 이전해야겠지만, 경주시가 이 부지를 활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활용계획서를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정현주 의원도 “경주문화원과 경주경찰서 이전 필요성은 있는 것 같지만 마치 경찰서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문제”라며 이와 관련한 필요성과 활용방안 등을 시의회에 별도로 상정할 것을 촉구했다.
서호대 의원 역시 “문화원만을 옮기기 위해 110억원을 들여 매입해야 한다면 100% 할 수 없는 사업이다”며 “경찰서를 이전해야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경주시가 매입해 모든 것을 오픈 시켜놓고 부지 활용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김동해 문화행정위원장도 “경주시의 설득은 명분이 없다. 대체부지 활용방안에 대해 집행부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당초 문화원 신축에서 리모델링으로 변경하는 등 졸속행정으로 용역비만 낭비한 셈이다”고 비판했다.
의원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회의 말미에야 김문호 경주시 시민행정국장이 해명에 나섰다.
김 국장은 “경주경찰서 부지 매입은 큰 틀에서 보면 읍성정비 차원이며, 그 대상이 경찰서와 문화원 이전과 맞물린 것”이라며 “기관 대 기관 간 협업 차원에서 추진하게 됐으며, 행정절차상 이번에 상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또 “일단 공유재산 매입 관련 승인을 받은 뒤 부지 활용방안 등은 연구·검토하고, 시의회의 의견을 수렴해 계획을 수립하겠다”며 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김 국장의 설명에 대해 좀 더 솔직한 답변을 요구하기도 해 결국 의원들의 이해를 구하지는 못했다.
엄순섭 의원은 “경주시가 다 아는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경찰서 부지를 매각하고 기재부에 보고 후 행정자치부에서 예산을 확보해야 경찰서가 신축 부지를 매입할 수 있는 것”이라며 “공유재산 변경안이 승인되지 않으면 올해 예산 확보가 어려워 경찰서 이전이 더 지연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엄 의원은 또 “이 같은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경찰서 부지를 매입해 문화원을 이전한다고만 설명하고 있어 의원들이 이해를 못하고, 해결도 되지 않는다”며 “이 부지에 정말 필요한 활용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야 해결될 일”이라고 경주시의 솔직한 답변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주시로부터 더 이상의 답변이 없자 회의는 정회됐다 속개하면서 보류동의안이 발의됐고, 표결에 들어갔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은 없었다. 최종적으로 보류 의결된 것.
-보류 결정 이유는 ‘졸속 행정’
이날 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 안건 심의에서 경주문화원이전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보류된 것은 경주시의 경주경찰서 이전 뒤 부지 활용방안 미흡과 오락가락한 행정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경주시가 이번 임시회에 제출한 계획에 따르면 경주시 동부동 150번지 일원 경주경찰서 부지 4456㎡를 110억원에 매입해 본관과 무기고, 탄약고 등 3개동은 야외상설무대, 관람석, 주차장 등으로 조성한다는 것. 또 별관과 신관은 리모델링해 각각 경주문화원과 경주시시설관리공단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부지를 매입하고 대회의실, 전시실, 강의실, 향토사연구실, 야외상설공연장 등을 갖추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국비 7억원, 도비 5억원, 시비 125억원 등 총 137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는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을 승인받으면 지방재정투자심사 등 제반절차를 거쳐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경찰서가 신축 이전하면 2020년부터 철거, 설계, 건물 리모델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어 2021년까지 야외상설공연장 조성과 경주문화원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불과 일주일 사이 급변경해 상정하면서 졸속행정 논란을 초래했다. 지난 3일 열린 경주시의회 의장단 간담회에서 보고한 경주시의 계획과는 크게 달라진 것.
먼저 당초 경주문화원 건물은 리모델링이 아니라 신축이었다. 경찰서 건물과 부지를 매입한 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454㎡ 규모의 문화원을 신축한다는 계획이었다. 경주시시설관리공단 사무실도 당초 계획에 없었다.
변경전 계획에 따르면 경주문화원 이전에 드는 비용은 부지매입비 110억원을 비롯해 건축공사비 66억원, 발굴 및 철거비 4억원, 설계 및 감리비 5억원 등 총 185억원으로 추산했다. 리모델링으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당초 예산보다 48억원 축소됐다.
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제대로 된 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하다가 시의회의 비판 여론 등을 감안해 불과 일주일만에 변경한 사안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
또한 신축을 전제로 한 용역 결과와도 달라져 예산낭비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전체 건물 안전진단결과 건축된 지 46년 된 본관만 D등급이었고, 별관과 신관 2~30년된 건물로 양호한 상태로 판명됐다”면서 “별관, 신관은 리모델링해 사용가능하다고 판단해 예산 절감 차원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전체의원 간담회서는 찬반 의견 엇갈려
그러나 지난 10일 열린 경주시의회 전체의원 간담회에서 의원들은 경주시의 이 같은 행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영희 의원은 “처음부터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경주경찰서 이전 이후 중심상권과 변호사 및 법무사 사무실 등에 영향이 있는데도 신축에서 리모델링으로 변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수년전부터 나왔던 이전문제를 주변 영향 등도 검토하지 않고 일주일 사이에 시설공단 하나 넣는데 그치는 졸속행정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질타했다.
정현주 의원은 “활성화 계획이 체계적으로 추진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경주시가 협조하는 것도 좋지만, 어떠한 손해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찰서를 위해 행정이 협조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취지는 알겠지만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현실적으로 다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항대 의원은 “현재 경찰서 상주 근무인원이 200여 명인데 중심상가에서 경제가 위축될까 염려하고 있다”면서 “문화원과 시설관리공단 상주 인원은 이에 비해 상당히 적은데 상가에 과연 도움이 될까 의구심이 든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강우 문화관광실장은 “이곳은 읍성지역 내 중요한 지역으로 민간이 매입해 무분별하게 개발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른다”면서 “시가 부지를 미리 확보해 일단 문화원이 들어서고 향후 활용방안은 시의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또 “문화원 상주 인원은 적지만 회원이 1000여 명이고, 문화행사를 계속하고 있다”며 “봉황대 뮤직스퀘어는 매년 무대 설치비만 2억원이 드는데 이 같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공연문화 활성화와 평생학습문화센터 준공 후 교육인원이 증가하면 도심상권 활성화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반면 일부 의원들은 경주시의 계획에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박승직 의장은 “시의회 심의와 관계없이 경주경찰서 이전은 이미 결정돼 있고, 부지를 시가 매입해 공익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며 경주시의 매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동호 의원도 “경찰서 부지를 개인이 매입해 여관 등을 짓는다면 제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시내권에 공연장 있으면 공연 때마다 사람이 몰려 상권이 활성화되는 만큼 경주시가 매입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경주문화원·경주경찰서 이전 왜?
경주문화원 이전 계획이 본격적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5년. 경주문화원 부지 및 건물 대부분이 기획재정부 소유 국유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상으로 사용해오다 기재부가 2015년 9월 30일 이후부터는 유상임대로 전환할 것을 통보해오면서 경주문화원 건립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경주시와 기재부의 협의에 따라 2018년 10월 1일까지 무상 사용하기로 연장된 상태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문화행사 등 각종 프로그램 운영 시 공간이 부족한 현 경주문화원을 신축 이전해 시민이 쉽게 접근 및 참여할 수 있는 공연문화 중심역할을 하는 공간 확보를 위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경주경찰서 이전은 더욱 절실하다.
경주경찰서 본관은 1971년 신축돼 46년이 지나면서 노후화돼 누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12지진 발생으로 청사건물 40여 곳에 균열이 가며 안전도 D등급 판정을 받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경찰관들이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1971년 당시 약 80명이 근무했지만 현재는 200여 명으로 증가하면서 업무공간이 비좁아 본관 2층 난간에 장비창고 설치, 소회의실을 사무실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사무공간과 민원인 편의시설은 부족해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 특히 주차공간의 절대 부족으로 직원들뿐만 아니라 민원인들도 주차할 공간이 없어 불법주차로 인해 견인까지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경주경찰서는 치안만족도 조사결과 매년 도내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지난 2008년부터 청사 이전을 추진해왔지만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다가 최근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양우철 경주경찰서장은 지난 3월 7일 경주시의회를 찾아 치안설명회를 열고 경찰서 청사 이전에 대한 시의회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주경찰서 이전 계획 차질 빚나?
그러나 이번 경주시의회 제221회 임시회 문화행정위원회 심의 결과 보류 결정이 나면서 다급해진 것은 경주경찰서.
경주경찰서는 이번 임시회에서 경주문화원 이전 관련 안건이 가결되면 내년 3월까지 부지를 확정하고 기본설계를 실시할 계획이었다. 이어 2019년까지 경찰서 부지와 이전대체부지 교환을 진행한 뒤 본 설계 및 착공 후 2020년 신청사 입주를 완료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경주경찰서 신축 이전을 위한 행정자치부와의 협의를 마무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해졌다.
경주경찰서에 따르면 5월내로 행정자치부와 경주경찰서 이전을 위한 부지교환 관련 협의를 마무리해야 내년부터 본격 추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월 경주시의회 임시회가 계획돼있지만, 5월 9일 대선 이후 열릴 전망이어서 안건이 가결돼도 행자부와의 협의가 늦어져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
특히 경주경찰서 신축 설계예산 4억7300억원을 확보한 상황에서 추진이 미뤄지면 향후 예산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찰서 내부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집행부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 자초’
이번에 2017년 제3차 경주시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이 보류 의결된 과정에서 집행부의 구조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행정 절차 과정을 들여다보면 경주문화원 이전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는 문화예술과, 공유재산관리변경안 상정은 회계과가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시의원들이 지적한 활용방안을 감안하면 더욱 다양한 부서로 나눠진다. 관광 관련 사업은 관광컨벤션과, 경주읍성 소관 업무는 문화재과, 중심상권 관리는 창조경제과 등등이다. 더 넓게 보자면 향후 관광코스의 중심이 될 월정교는 신라문화융성과가 업무를 맡고 있다.
이 같은 행정구조 속에서 경주경찰서 이전 후 제대로 된 활용방안을 수립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주시 전체를 하나로 묶어 발전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주문화원 이전과 관련해 단순하게 생각해도 경주읍성과 향후 추진되는 금관총 전시관, 신라대종, 천마총 등 동부사적지, 월정교 그리고 도당산터널을 지나 남산까지 훌륭한 관광코스는 그려진다”면서 “도심에는 관광객들의 기호에 맞는 음식 및 기념품 개발과 다양한 볼거리 등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주시는 각각 부서에서 맡은 업무만 추진하고 있을 뿐,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없다”면서 “경주발전을 위해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방안마련을 추진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