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앞 담장으로부터 약 30여m 떨어진 곳에 당간지주가 우두커니 외로운 모습으로 서 있다. 당간지주 주위로 유채꽃이 배시시 웃고 있다. 유채꽃이라면 먼저 제주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맘때가 되면 남해안을 비롯해 남부지방 곳곳에 유채꽃이 장관을 이룬다. 근래에 우리 경주에도 사적지 주변에 이 꽃을 심어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분황사가 남향인 데 비해 이 당간지주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황룡사지와의 사이에 있어 이 당간지주가 분황사 소속인지 황룡사 소속인지 명확하지 않아 문화재청에는 ‘구황동 당간지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황룡사9층목탑 터에서 동남쪽으로 100m 지점에 553년(신라 진흥왕 14) 이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윗부분이 부러진 황룡사지당간지주가 있다. 따라서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 소속임이 분명해 보인다. 절로 가는 길목에 부처의 세계에 다가온다는 걸 알리기 위해 당간(幢竿, 깃대)을 세워 그 위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았다. 이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세운 것이 당간지주인데, 보통 두개의 기둥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서 있다. 당간지주 사이 바닥에는 간대(竿臺)나 기단이 마련되어 있고, 두 기둥은 당간을 끼울 수 있는 거리에 서로 마주보게 세우고 당간을 받치기 위해서 간공(竿孔)이라는 구멍을 뚫어 놓았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돌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분황사 당간지주는 화강암으로 만든 한 쌍의 돌기둥이 68cm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지주의 전체 높이는 3.7m인데, 상부로 올라갈수록 줄어들면서 끝은 바깥쪽으로 둥그렇게 마감되어 있다. 이 당간지주는 별 다른 장식 없이 바깥쪽의 모만 접었으며 당간을 세워 고정시킬 수 있는 지름 15㎝ 되는 3개의 간공이 1.25m간격으로 뚫려 있고 서로 마주보는 지점에 관통하도록 되어 있다. 두 지주는 같은 수법으로 만들어졌으며 간대석은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일반적으로 네모난 간대석에 원공만 새겨져 있으나 분황사 당간지주는 정교하지는 않지만 귀부가 있고 귀부의 윗부분에는 동서쪽에 연화문을 장식한 네모 모양의 간좌를 하나의 돌로 조각해 설치했다. 그리고 간좌 위에는 사각형의 원공을 새겨 당간을 받칠 수 있도록 조각되어 있다. 귀부는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오른쪽 앞다리와 왼쪽 뒷다리 부분이 크게 깨어졌고 겁에 질린 듯 목을 잔뜩 옴츠리고 있다. 등에는 귀갑무늬가 없고 간좌 위에는 27cm x 20cm의 방형 홈이 파져 있어 당간을 받칠 수 있도록 하였다. 당간을 놓는 자리는 가운데가 아니고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간좌의 네모난 홈에는 고인 빗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낙수홈이 있는데 고인 빗물은 귀부의 뒷등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뒤쪽에 홈을 파 놓았다.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귀부의 조각형태를 보아 창건 당시가 아닌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을 받치는 받침석에 귀부가 조각된 것은 이곳이 유일하며, 당간지주를 연구 하는데 귀중한 자료로서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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