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의 봄 -함민복 똥차가 오니 골목에 생기가 확, 돕니다 비닐 봉지에 담겨 골목길 올라왔던 갖가지 먹을 것들의 냄새가 시공을 초월 한통속이 되어 하산길 오르니 마냥 무료하던 길에 냄새의 끝, 구린내 가득하여 대파 단을 든 아줌마가 코를 움켜쥐고 뜁니다 숨 참은 아이가 숨차게 달려갑니다 부르르 몸 떨며 식사중인 똥차의 긴 호스 입 터질까 조심, 목욕하고 올라오던 처녀가 전봇대와 몸 부딪쳐 비눗갑 줍느라 허둥대는 살내음 라일락꽃에 걸쳐 있던 코들도 우르르 쏟아지고 말아 -봄, 하면 떠오르는 것들 봄,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대부분 꽃을 들 것이다. 바위 틈새 복수초가 피고, 이어 매화가 꽃망울을 열고, 목련과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들이 부신 햇살 아래 만개하니 완연한 봄인 줄 알겠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꽃들만이 꽃이 아님을, 그건 껍데기 진실에 불과함을 알려주는 시가 여기 있다. 이 시의 봄은 지독한 구린내, 푹 썩은 똥냄새로 시작된다. 그 냄새 때문에 “대파 단을 든 아줌마가 코를 움켜쥐고” 뛰고, “숨 참은 아이가 숨차게 달려”간다. 사람들을 ‘뛰고 달리게’ 하는 것은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선물일터인데 그 역할을 이 골목에서는 “부르르 몸 떨며 식사중인 똥차”가 하고 있는 것이다. 유쾌하게 읽히는 이 시는 뜻밖에 우리에게 묻는다. 똥냄새가 꽃내음과 다른 게 뭐냐고? 봄나무가 계절의 생기를 실컷 빨아들여 먹고 뱉어내는 게 꽃이라면 똥 역시 바로 사람들이 음식들을 넉넉히 먹고 엉덩이를 열어 피워낸 꽃봉오리 아니냐고? 그러니 구린내는 결국 사람의 짙은 향기일 수밖에. 허나 따사로운 대지의 기운을 실컷 먹고 몸 밖으로 내보내는 배설인 봄나무의 꽃내음을 빨대라도 꽂은 듯이 빨아대던 인간들은 유독 인간이 피워내는 그 내음 앞에서는 유독 코를 막고 숨 막히게 뛰어만 간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봄내음의 잔치판인 이 시에는 꽃의 세 층위가 존재한다. 목욕탕을 갔다 오는 처녀가 “똥차의 긴 호스 입 터질까” 허둥대다 전봇대와 몸 부딪쳐 비눗갑을 줍느라 풍기는 살내음은 냄새 축에도 끼지 못한다. 꽃내음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인간의 코를 유독 부유하게 하는 라일락꽃의 내음도 그 앞에서는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람의 배설이 만들어내는 꽃내음이 앞의 두 내음을 맡는 코를 “우르르 쏟아”지게 하고, 이 무료하던 동내를 아연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유머와 역설의 유쾌한 잔치, 그 너머의 발견이 이 시의 힘이다. 그건 똥을 인간의 꽃봉오리로, 구린내를 꽃내음으로 읽는 능력이다. “미는 언제나 엉뚱하다”라고 한 이는 보들레르였다. 진정한 미는 어쩌면 우리가 늘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의 실체를 지각했을 때 생기는 충격이다. 그러기에 시는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의 결별에서 탄생한다.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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