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200자루,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단 하나의 샤프를 제작해 사랑으로 전하는 ‘안강할배’ 정동문(72)씨.
젊은 시절 사업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을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강의 적신호.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조금씩 건강을 되찾았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도움 받은 만큼 다시 되갚고 싶었다. 활동이 어려운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한 자리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남들보다 좋았던 손재주. 이 두 가지의 조건을 만족하면서 잘할 수 있었던 일이 바로 수제샤프를 만들어 나누는 것이었다.
“몸이 회복이 되면서 ‘내가 받은 도움을 되돌려주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당시에 읽었던 신문 내용 중에 요즘 학생들의 글씨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는 기사를 봤고, 그래서 글씨 연습에 필요한 샤프를 만들어서 나누게 된 것입니다”
샤프를 만들어서 나누어온 시간이 벌써 10여 년. 그의 손에서 만들어져 아이들에게 전해진 샤프만 해도 2만여 자루에 가깝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정부에서 나오는 비용에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샤프를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한다.
직접 나무를 손질하고, 부품을 조립, 샤프 하나하나에 직접 아이들의 이름까지 새겨서 완성된 샤프는 매월 200개. 처음 나눔을 시작할 당시에는 100개를 만들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숙련된 기술과 샤프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200개를 고정적으로 만들게 됐다.
“샤프에 이름을 새겨주게 된 이유가 있지요. 처음에는 이름을 새기지 않고 그냥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샤프가 분실되고, 파손되고 하는 일이 생기면서 아이들끼리 다투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름을 새겨주기 시작했습니다”
정성껏 만들어진 샤프들은 그가 나눔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아이들의 두 손에 전해지기까지 쉽지 않았다.
‘이유 없는 나눔은 없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으니 나눔을 하는게 아닌가’라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그의 진심을 왜곡하고 외면했던 것.
“지금이야 200개를 만들면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으니 전하기는 쉽죠. 처음에는 나눔을 하고 싶어도,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아 정성껏 만든 샤프를 전할 곳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혼자서 나눔을 전할 장소를 찾기도 어려웠구요. 그래서 당시에 시청 복지과 공무원의 도움으로 지역의 아동시설에 샤프를 전했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이나 더 지역의 아동시설의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경계를 하고 쉽사리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정성껏 만든 샤프가 전해질 곳을 찾지 못해 어려움도 많았지만 여기저기서 아이들을 위하는 따뜻한 그의 진심을 알아준 곳이 나타난 것. 비록 우리 지역은 아니지만 타 지역의 아이들의 두 손에는 매월 정동문씨가 만든 샤프가 쥐어지고 있다.
이제는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수제샤프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부스섭외까지 들어올 정도로 안강할배 정동문씨의 샤프는 인기다. 힘들어도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샤프를 전해 받은 아이들이 써주는 편지에서 힘을 많이 얻기 때문이라고.
“많이 힘들죠, 나이도 있고 건강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힘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제가 만들어준 샤프로 아이들이 써준 편지를 보면 다시 힘이 생깁니다. 한 아이는 편지에다가 100원짜리 동전 2개를 테이프로 붙여서 샤프를 만드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내용으로 저에게 편지를 써줬습니다. 어찌나 귀여운지... 그런 편지를 받으면 없던 힘도 더 나게 되더라구요”
샤프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얼굴과 아이들의 편지에서 힘을 얻는다는 그의 최종목표는 장애인들에게 샤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 장애인들에게 금전적 후원은 못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전수해 그들의 삶의 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은 것이 최종목표라고 한다.
“곧 장애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는 수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 보다는 고기를 잡는 기술을 전해 그들에게 삶의 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나누는 것 중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나누어야 할 것이기도 합니다”
10여 년을 나누었고, 이제 남은 시간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나눔을 시작하려는 안강할배 정동문씨.
“나눔이란 준비를 하고서 시작하려고 하면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가되면, 여유가 되면’이라는 마음이 있어서는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생각을 한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하십시오.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심은 언제나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듯함을 나누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