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바로 지척에서 극단 배우들의 숨소리 생생한 대사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예술적 행위의 감상을 통해 가슴이 뛰거나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적은 언제인가요? 한창 나들이 즐기기 좋은 날씨다. 어디든, 봄의 향기 따라 떠나가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돌멩이 하나에도 봄은 와 있기에. 경주도 곧 그림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시즌이 다가온다. 이즈음, 밖으로만 향하는 외연의 확장도 좋지만 그 시선을 안으로 끌어들여 내면을 살찌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바야흐로 선물같은 문화 행사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주말 날씨가 풀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외곽도 둘러보았다. 만물은 봄기운 탓인지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꿈틀대고 있었다. 대학 교수진들과 예술가들을 우연찮게 만났고 그들이 함께 기획하는 콜라보레이션 문화공간에의 구상도 엿들을 수 있어 기뻤다. 이런 인위적인 움직임이든, 자연적인 움직임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우리를 살찌운다면. 경주는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연중 기획, 준비되고 있다. 사실 경주 같은 중소도시에서 이만큼 풍족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도시는 흔치 않다. 클래식의 선율에 심취하든, 소극장 연극을 관람하든, 무용, 전시, 학술 아카데미, 강연 등 공연 예술 활동을 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도시다. 경주문화원, 경주예술의전당, 각 사단법인 등에서 주최하는 여러 학술 아카데미도 문을 활짝 열고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문화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관람료는 저렴하거나 무료일 경우가 많고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퀄러티 높은 콘텐츠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많은 편인 경주시의 문화 복지정책 수준은 낮지 않다. 4월말쯤 시작되는 봉황대 뮤직스퀘어 등의 무대에서는 내로라하는 대중가수들의 공연과 클래식 공연이 줄을 잇고 본격적으로 공연 예술이 범람하는 시기다. 포항시립극단의 한 배우는 도시 규모가 큰 포항에 비해 경주시민들의 연극 관람도가 훨씬 높다고 했다. 경주시민이 극장을 자주 찾는다는 것. 차제에 경주시립극단이 펼치는 연극의 매력에도 빠져보길 권한다. 단돈 5000원이면 족하다.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고민하는 출판계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자. 가까운 도서관이나 서점을 들러도 좋고 최근, 경주에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헌 책방과 독립책방을 찾아도 좋을 듯하다. 일반 대형 서점에선 찾을 수 없는 독립 출판류 서적을 다루는 책방과 헌 책방 한 곳이 그것이다. 두 곳 다 작은 규모의 책방이지만 헌 책의 씀씀한 향기는 우리속에 잠자고 있던 인문학적 감성을 일깨우고 채워줄 것이다. 경주는 살수록 문화의 저력에 감탄하는 곳이다. 오랜 기간 차곡차곡 쌓아올린 문화의 힘이 여전히 강한 도시다. 신라인의 막강한 문화적 유전자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가 자부심을 느낄 대목은 수시로 발견된다. 어느 구석진 작은 마을에도 조상의 유산유물이 없는 곳이 없다. 간단한 도시락을 싸서 유서깊은 명품마을들을 찾아 나서도 좋다. 문화예술 콘텐츠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경주는 문자 그대로 보고(寶庫)다. 박물관 나들이는 또한 어떤가. 전국 박물관 중에서도 그 위상이 높은 한국적이고도 세계적인 국립경주박물관이 바로 지척에 있다. 이 외에도 최근 개관한 경주세계자동차 박물관, 경주한국대중음악박물관 등의 콘텐츠도 전국적이고 우수하다. 사설 갤러리들에도 들러 작품들이 전하는 기쁨을 검증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이들을 감상할 동반자가 없어서 혼자 가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즐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더욱 묵직한 감동으로, 때로는 선율이 귀에 더욱 생생할 것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즐기면 된다. 기본 매너만 갖춘다면 금상첨화. 좋은 관람객의 매너는 더욱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들기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청력, 훌륭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시력을 가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평소의 취향에 따라 골라도 되고 평상시 접하지 않았던 장르에 도전해 보아도 좋다. 공연과 전시에 동참해 감상하는 일은 대중적이고 낭만적이고 화려해지는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감상의 여운으로 행복감과 앙상블을 이룰테니 말이다. 곧 4월이다. 우리의 적극적인 문화 프로그램에의 호응과 참여는 다양한 장르로 재생산돼 경주문화의 지평을 넓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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