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투박하고 낡은 벽시계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 옆엔 그것을 쳐다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남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벽시계만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그 긴장감은 도무지 방해를 허용할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팽팽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흐르던 침묵을 깬 건 옆에 있던 남자의 마른기침입니다. 그리고는 마치 독백이라도 하듯 나직한 톤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맞아요, 비명소리였어요. 놀라셨겠지만 분명 시계 안에서 난 소리에요. 믿기지 않으시죠?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정말 상상도 못 했지요. 시계 속에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니…. 사람들이 과연 이 사실을 믿기라도 할까요? 보고도 못 믿을 겁니다”
“그러게요, 밀폐된 시계 속이니까 숨을 쉬는 것 같지는 않아요. 뭔가 먹는 모습도 못 본 것 같아요. 그래도 나름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이 있을 겁니다.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좋은지 몸을 흔드는 걸 보면 언어나 문화 같은 것도 있나 봐요”
“저기 저 빨간색 초침 보이시죠? 우리 눈엔 그냥 초침이지만 시계 속 생명체에겐 소리없이 다가와 생명을 앗아가는 칼이지요. 닿기만 해도 날카롭게 잘려나가요. 아주 치명적입니다. 여기 보이는 녹색 얼룩은 며칠 전에 있었던 사고 흔적이고요”
“아기나 어린 생명들은 키가 작아서 그나마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초침으로부터 자유롭죠. 젊은 생명체는 냅다 달립니다. 초침이 언제 올지 알고 미리 피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럿이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항상 주변을 살핍니다. 정말 피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일 때는 있는 힘껏 점프를 해요. 그렇게들 피해요. 그런데 문제는 노인들이죠. 따라오는 초침보다 빠르지 못하거든요. 방법이 없어요. 엎드린다 해도 초침이 날카롭게 몸을 베어버리니까요”
“그렇죠, 살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무조건 초침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수밖에요. 느리다고 분침하고 시침을 무시했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초침이 생명체들을 막 몰고 오는데 시침이 앞에서 떡~ 하니 가로막고 있다고 상상해 봐요. 두 침은 반드시 겹칠 테니 그 사이에 끼이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해요”
“저도 그럼 결국 다 죽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끝까지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더라고요. 정답을 찾은 녀석이라 생각해요.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 말입니다. 한번은 초침이 거의 다 따라잡았는데도 도망치지 않는 녀석을 봤어요. 그냥 초침이 통과를 해버려요. 가만히 서서 도망간 친구들을 기다리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죠”
“답요? 의외로 간단해요. 시간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니 답도 거기에 있더라고요. 이를테면‘절대현재’같은 겁니다. 저기 초침 오는 거 보이지요? 저건 어디를 향할까요? 그래요. 미래를 따라잡기라고 하듯 앞으로만 가죠. 그럼 과거는요? 초침이 지난 그 자리가 바로 과거죠. 결국 미래와 과거는 초침을 앞뒤로 두고 같이 움직이는 구조라는 말이지요.”
“시계 속 세상에는 미래나 과거는 분명한데, 그럼 현재는 어디 있을까요? 아뇨, 지금 보이는 저 7시 10분 21초는 그냥 째깍거릴 때마다 바뀌는 숫자일 뿐이고요. 바로 22초가 되는 거 보이시죠?. 그러니 1초만 현재라라는 것도 말이 안 되죠. 허허허, 초침 위에 현재가 놓여있다는 것도 억지스럽고요. 웃기는 게 시계 속 그 어디에도 현재는 없다는 겁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신세지요. 태어나서 자라다가 어느새 늙고 병들다 죽는, 시간의 지배를 받으니까요. 우리도 그 절대 현재를 알면 시간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네, 물론 가르쳐 달라고 해봤죠. 그랬더니 유리 속 존재가 그러는 것 같아요. 그 답은 스스로 찾는 거라고, 아무도 대신 가르쳐줄 수 없다고…”
“하기야 생명처럼 소중한 답을 쉽사리 가르쳐 줄 수야 없겠죠. 하지만 정말 궁금하단 말입니다. 도대체 현재는 어디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