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그릇
-강문숙
의자는 그릇이다, 흔들리면서 누군가의 몸을 담는다
그저 겸손히 받아들이면서 그의 생을 한순간 안아보는 것인데
설레임보다는 예고 없이 쿵, 떨어지는 심장 같은 것일 때가 많다
한 생이 담겨진다는 것은 희로애락의 지난한 은유일 뿐
오랜 시간 흘러왔을 내밀한 그리움과 고독, 또는
숨 가쁘게 걸어왔던 순간들이 버무려져 의자는 보이지 않게 우묵해진다
삐걱삐걱삐걱, 그래그래그래, (여자도 오랫동안 그릇이었으니)
저 소리는 한 생의 무게를 다 읽어낸 흐느낌이 배어 있는 그릇이
마음의 흔들림을 빙자하여 제 속에 고인 울음을 다스리려는 방편(方便)이 아닐까
저녁이 되는 것도 모르는 채 흔들의자와 여자는 오롯이 한 몸이다
한 생을 다한다는 것의 숭고함이란 누군가의 몸을 담아 보아야 안다
한 때 아이를 담고 있던 그 여자의 자궁처럼, 의자는
거실 한 귀퉁이에서 비스듬한 자세로 고요하게 어두워진다
- ‘의자’와 ‘여자’ 나란히 읽기
의자는 그릇이다. 흔들리면서 누군가의 몸을, 생을 담고 안는다. 지금까지 의자가 가장 많이 안은 것은 “예고 없이 쿵, 떨어지는 심장 같은 것”이었다. 그 공감 때문에 의자는 같이 흔들리고 몸을 받아들여주었을 것이다. 의자가 보이지 않게 우묵해지는 것도 그리움과 고독, 숨 가쁘게 걸어왔던 순간들이 버무려졌기 때문이란다. 의자는 착한 그릇이라기보다는 품이 넓은 그릇이다.
“삐걱삐걱삐걱”하는 소리는 어느덧 “그래그래그래” 끄덕이며 어느 것이든 받아들여 품어안겠다는 품 넓은 공감과 연민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타자와 공감하면서 의자 그도 제 속에 고인 울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단독자로서 존재론적인 고독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의자를 한 때 아이를 담고 있던 그 여자의 자궁이라 한다. 안 그래도 ‘의자’는 발음마저도 ‘여자’를 닮았구나. 그들은 그렇게 생의 “저녁이 되어가는 것도 모르는 채” 숙연하게 한몸이 된다. 거실 한 귀퉁이에서 황혼녘의 의자는 비스듬한 자세로 고요하게 어두워진다. ‘의자’를 노래한 시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특히 모성과 동일시하여 읽은 사람은 이 시인이 처음이다. “분명해지던 사물들의 찬란함이 스스로 제 몸의 윤곽을 지울 때까지가/생활이다”(「생활의 발견」)는 시인의 구절에 기대어 ‘의자’와 ‘여자’를 나란히 읽는 일은 한없이 쓸쓸하고도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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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