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때로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사람을 겸손하게도 하고 심하면 죽음을 음미하며 자아를 반성하게도 한다. 나 역시 이번에 병상에 있는 40여 일 많은 것을 얻었다. 죽음을 준비하기도 하였고 남들의 사랑에 다시 한 번 더 감격하기도 하였다. 또 무료한 시간이 많아 이런 저런 많은 책을 읽기도 하였다. 늘 읽고자 마음만 먹었으나 하도 양이 많아 엄두를 못 내던 박경리 여사의 <<土地>> 22권을 다 읽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함석헌 선생이 주간하신 <<씨알의 소리>> 영인 합본에서 함 선생님과 장준하, 안병무 등 제씨의 글을 좀 읽었다. 그러나 다 지나간 일이라 큰 재미가 없었다. 무엇을 읽을까 하다가 다시 성경을 들었다. 그러나 역시 지루하였다. 남들은 읽어도 읽어도 꿀처럼 달다는데 나는 영감이 부족해서인가 거의 다 아는 내용이라 그만 지루했다. 이러는 가운데 우연히 논어 책을 들게 되었다. 대만의 학자 구섭우(邱燮友) 교수가 현대어로 번역한 책이었다. 나는 중국어를 잘 모르긴 하나 그래도 이런 문어체 글은 대강 알므로 읽어갔다. 그런데 새삼 재미가 있었다. 실은 논어도 여러 번 읽었다. 고려대학에서는 1년간 강의도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다 한국에서 예로부터 주로 읽는 주희가 주석한 논어였다. 좀 따분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읽는 구섭우 교수의 주석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하여 지루하지가 않았다. 갑자기 이를 혼자서만 읽을 게 아니라 번역해 많은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가 하니 나는 20여 년 전 구섭우 교수의 『唐詩 三百首>』를 번역하여 출판한 일이 있었기에 그런 욕심이 생긴 것이다. 번역본은 약 1000페이지에 가까운 거질이라 비싼데도 제법 팔린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재판도 하였다. 그래 이 책도 번역해 볼까하는 그런 욕심이 갑자기 생긴 것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니 논어 번역본이 수도 없이 많은데 거기 또 내가 덧붙여 뭘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구씨의 주석이 새롭긴 하나 그래도 오십백보요, 특별히 이목을 끌 무엇이 없는데 누가 읽겠느냐는 것이다 그래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래도 그 주석이 깔끔한데다 또 내가 느끼는 감동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더구나 내 주위의 많은 분들은 대개 다 신학문에는 능통하나 이 고리타분한 옛 글에는 별 흥취를 갖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차제에 이를 한번 맛보시라고 권하고도 싶은 것이다. 그래 이 주석에 감동을 보태어 그대로 지인들과 나누고자 생각하였다. 그래서 “논어 묵상”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글은 이런 바탕에서 출발하였다. 다 아시다시피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니 2500여년 전의 책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감동을 준다. 참으로 위대한 고전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주석과 감동을 그대로 다 쓰려면 한이 없을 것 같다. 한 주에 한 장씩 쓰더라도 4, 5년 가까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무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선 시도라도 해 보자는 오기가 생긴다. 때론 한 주에 두 세 장도 쓰리라. 이도 노욕인가? 노욕이라도 이런 노욕은 좋지 않을까 자위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구씨의 해석을 번역함에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 혹은 삭제 혹은 첨가 또는 내 나름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우선 구씨는 각 장마다 <章旨>라 하여 간단히 말하였으나 오히려 이해에 더 번거로움을 주는 것 같아 모두 삭제키로 하였다. 그밖에 첨가나 삭제 등은 극히 적을 것이요, 그럴 때는 꼭 밝히겠다. 끝으로 글을 씀에 미리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독자께서는 때때로 보시고 의견을 말씀하여 주시면 도움이 되겠다. 그리고 혹 잘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기탄없이 물어주시기 바란다. ---------------------------------------------------------------------- 안병렬 교수는? 1936년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중·고등학교, 계명대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 박사학위(문학박사)를 받았다. 국립안동대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 학장 임기를 마치고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연구교수로 있다가 연변에 정이 들어 안동대를 사직하고 지금껏 연변에 살면서 강의, 독서운동과 장학사업, 문필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변생활에서 쓴 수필집으로 ‘동토가 아니에요 꽃이 핍니다’ ‘중국 연변의 안동마을’ ‘연변에의 아가’ ‘사랑을 파는 사람’ ‘달처럼 살렵니다’ ‘한알의 밀알이 더 필요하시다면’과 시·시조집으로 ‘연변별곡’, 설교집으로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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