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아인들에게는 엄마와도 같은 분이지요. 자상하면서 겸손하기까지 하셔서 우리들이 부를때는 ‘겸손’이라는 수화로 부릅니다”
‘엄마’, ‘겸손’은 지역의 농아인들이 정덕자 씨를 표현하는 말이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농아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수화를 익히고 농아인들과 비장애인들간 장벽을 낮추기 위해 통역까지 해온 정덕자씨는 그를 표현하는 말처럼 인터뷰 내내 겸손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면서 살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1990년도에 다니던 교회에서 수화교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수화를 이용한 봉사를 꾸준히 해온 정덕자 씨는 그때 익힌 수화가 운명처럼 와 닿았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죠. 수화라는 것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느껴졌어요. ‘아 ... 이건 내가 꼭 배워서 농아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라는 느낌?(웃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입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그들에게 작은 인사라도 건네는 것. 그런 작은 관심에서 출발 했습니다”
정덕자 씨가 관심과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비장애인인 우리는 ‘다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체가 제기능을 하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말하는 소통이 되잖아요. 하지만 농아인을 비롯한 다른 장애인들은 그런 소통에서 소외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상처를 많이 받고 힘들어하죠. 그래서 다 가진 우리가 그들에게 작은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20여 년을 농아인들과 지역의 어려운 이들에게 보여 온 관심. 이제는 전문수화통역사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봉사에 대한 마음만큼은 여전하다.
“사실 제가 몇 번이나 도전했지만 수화자격증을 취득하지는 못했어요.(웃음) 일상대화는 수화통역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전문적인 대화는 통역이 힘들었습니다. 때마침 다니던 곳에서도 전문통역사 선생님이 오셨고 해서 이제는 전문적인 통역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도와주려고 노력중이에요”
“수화는 손만 움직이는 언어가 아니고 얼굴 표정이나 감성으로 전하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가볍게 나눌 수 있는 인사부터 시작해 청각장애란 영역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길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