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탄사지 삼층석탑은 철제 울타리 속에 갇혀있다. 주위에 무분별하게 경작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이리라. 그러나 왠지 울타리 속의 탑이 갑갑해 할 것 같다.
이 탑은 1980년 6월 이곳 미탄사지 일대를 발굴하여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하였는데 높이가 6m, 기단 너비는 3.86m다. 2층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렸다. 옥계석에는 층급받침이 3개이고, 상륜부는 없었는데 탑을 복원하면서 노반을 새로운 석재로 보완하였다.
삼층 석탑 앞에는 하대석과 간주석만 남은 석등이 있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석탑이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9세기 혹은 10세기 초에는 앞 시대보다 석탑의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흐름과 달리 드물게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1980년 사지 일대를 발굴조사하고 삼층석탑을 복원한 후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시굴조사에서 금당으로 추정되는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된 약 37m에 이르는 대형 건물지를 찾았다. 이 건물은 2차례 이상 중건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지(門址)도 2차례 이상 중건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북쪽과 동쪽 경계로 추정되는 곳에 4기의 담장, 추정 강당지, 추정 종루 등을 포함한 건물지 2동, 배수로 4기, 방형석조 1기 등을 확인하였다.
시굴조사 중 사찰의 동남편 건물지에서 하반신이 결실된 토제 나한상이 출토되었다. 왼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을 뒷머리에 댄 채 탄식하며 절망하는 듯한 표정이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부처의 경지에 오른 뛰어난 제자를 나한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무량의 공덕과 신통력을 지니고 있어 열반에 들지 않고, 세속에 거주하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찰의 응진전 또는 나한전에 이와 같은 나한상을 모셔둔다. 이들은 모두 세속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듯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한다.
이 외에 발굴된 주요 유물로는 ‘味呑’명 기와, 연화문 수막새, 쌍조문 암막새, 당초문 암막새, 선문 타날 평기와, ‘井’자명 벽돌 등의 와전류와 인화문토기, 병, 활석제 뚜껑 등의 토기 및 도자기류가 출토되었다.
특히 ‘味呑’명 기와가 출토되어 미탄사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문헌으로만 추정해왔던 독서당 유허지, 황룡사 등 주변유적과의 연관관계 등을 알 수 있었다.
발굴 당시 탑 기단부에서 소금동불입상 1구, 수정제 장식 2점, 금동제 영락 1점, 흙으로 만든 벼루 조각 등을 포함한 유물 30여 점이 발견되었다. 석탑의 양식과 유물 등의 성격으로 미루어 9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일반적인 석탑의 기법과 달리 잡석과 진흙을 다져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이 완성될 때마다 굳히면서 쌓아나가는 기초부의 판축 축조방식을 사용한 점, 기단부 적심(積心) 내에 땅속 신에게 빌기 위한 지진구(地鎭具)가 출토된 점 등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석탑의 기초부를 논할 때 근거 자료로 활용되는 중요한 석탑으로 판단하여 2017년 1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28호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