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유년 새해가 열린 지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2월 중순이다. 매정한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도 않고 이렇게 쏜살같이 날아간다. 이쯤 되면 집집이 사정은 비슷하리라. ‘새해엔 꼭 금연에 성공해야지’ 등 단단한 각오는 그 보다 더 단단한(!) 현실과의 괴리를 후회로 채우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살면서 피하고 싶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후회다. 여기에는 보통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행동 후회’와 ‘비행동 후회’가 그것이다. 앞의 후회는 글자 그대로 실행한 행동으로 인해 후회가 생기는 경우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어렵게 고백했는데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을 때 ‘아, 그때 고백하는 게 아니었어’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반면에 같은 짝사랑이라도 고백할 기회만 노리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 타이밍을 놓쳐 후회가 생겼다면 그것은 비행동에 따른 후회다. ‘아, 그때 고백을 했어야 하는데’ 하고 주저주저하다가 망쳐버린 기회에 대한 후회가 비행동 후회다. 이 두 후회를 더욱 심각하거나 또는 경미하게 만드는 조건도 당연히 ‘시간’이다.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Tom Gillovich)는 무작위로 뽑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근 사건에 대한 후회와 오래 된 사건에 대한 후회를 조사해 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최근 사건에 대한 행동 후회(53%)가 비행동 후회(47%)보다 높았다. 즉 근래의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저지른 행동에 대한 후회가 행동하지 못한 미련에 따른 아쉬움보다 컸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오래 전의 일일 경우에는 비행동 후회(84%)가 행동 후회(16%)보다 현격히 높았다. 결과가 만족치 못해 생긴 행동 후회는 결과가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이미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합리화나 정당화, 아니면 체념이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적으로 후회를 경미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공산이 크다. 본인이 덜 아프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 당장은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고통스럽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경험을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 내 후회를 되풀이 하지는 않는다. 몸도 마음도 그 고통의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망각은 크나큰 축복이다. 무엇보다 우리 뇌는 일단 완결된 사건은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 쉽게 잊어버린다. 정말 큰 문제는 비행동에 따른 후회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수반되지 않았기에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떠한 결과도 도출되지 않는다. 이는 위의 합리화나 체념처럼 후회를 낮추는 인지적 처리 과정이 애초부터 어렵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미련과 후회는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만 간다. 사랑 고백을 못한 당시에는 살짝 후회가 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는 커지고 닭살 커플들이 어깨를 치고 갈수록 심화되다가 급기야는 오뉴월에도 서리를 만든다는 한(恨)이 되고 만다. 완결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이런 ‘미완성 효과’로 인해 후회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언제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호주에서 호스피스 간호사로 근무하는 브로니 웨어(Bronnie Ware) 말이다. 그녀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했던 후회들을 모아 ‘죽을 때 가장 후회되는 다섯 가지’라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리고 거기서 포스팅한 글을 모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라는 책을 펴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는 다섯 가지 후회는 ‘내 뜻대로 한번 살아볼 걸’, ‘일을 좀 적당히 하면서 살 걸’, ‘내 기분에 좀 더 솔직하게 살 걸’, ‘오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낼 걸’, ‘좀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해볼 걸’ 등이다. 죄다 가슴에 남고 또 남을 비행동 후회뿐이다. 어느새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지만 그 중심 졸가리는 분명하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새해에 각오하고 시작했던 그 모든 일들을 후회가 남지 않게 열심히 하자는 거다. 벌써 한 달 하고 보름이나 지났지만, 고쳐 생각해보면 올 해가 아직 열 달 하고도 반이나 남았다. 후회하고 있기엔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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