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 쓴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번 시나리오가 영화로 되면 청혼하려고 했어. 옆에 사람 있는거 같더라구. 남자가 치과 의사야. 서로 좋게 만나는 것 같더라. 나 보다 백 배 낳지. 내가 붙잡아 두면 안되는 거 아니냐”
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만년 감독 지망생인 재생이가 재생을 뒷바라지하는 애인 정현을 두고 무명배우 정호에게 넋두리 하는 대사다. 이렇게 비루한 청춘들의 이야기로 연극은 시작된다.
제109회 경주시립극단 정기공연 연극 ‘임대아파트(연출 김한길)’가 3월 9일(목) ~ 12일(일)에 걸쳐 경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 무대에서 열린다. 경주시립극단의 젊은 배우들 세 쌍이 열연하는 이번 연극은 살아가고 있는 삶이 아름다운지, 우리들은 인생을 어디만큼 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김한길 감독과 출연배우들은 잔잔한 일상적 요소를 매우 세밀하게 표현해 한 편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이끌어낸다. 지난 21일, 오는 3월 9일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여념이 없는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 경주시립극단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연극 임대아파트는 평범한 우리들의 꿈과 희망을 떠올릴 소중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고단한 일상에 찌들어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찬가’라는 평을 받으며, 2006년 초연 이후 매번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여러번 앵콜 공연된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와 과감한 시도로 평단의 이목을 집중 시켜온 경주시립극단 김한길 예술감독이 선보이는 두번째 공연이다.
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만년 감독 지망생인 재생(이현민 분)과 동대문에서 옷을 팔아 재생을 뒷바라지하는 정현(권예진 분), 무명배우 정호(이인호 분)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그의 첫사랑 선영(정혜영 분), 그리고 배낭 여행중에 만나 현해탄을 넘나들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대학생 정수(전봉호 분)와 일본인 유까(이지혜 분) 등 세 커플의 사랑 이야기와 꿈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굴러다니는 소주병, 먼지만 쌓이는 샴페인과 발표하지 못한 시나리오로 표현되는 재생과 정호의 모습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가진 것 없는 모자란 인생들일 수 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도 꿈을 이루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않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박한 현실에 부딪히고 좌절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임대아파트’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희망 한 자락을 끝내 잡고 진한 감동을 끌어낸다. 거기서 소소하게 숨겨놓은 듯한 의미를 발견하고 곱씹어가는 이야기다.
한편, 이번 극은 무대 미술적 측면보다는 특별한 무대 전환없이 미니멀하게 흘러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 또 다른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한길 감독의 전언이다.
김한길 감독은 “결국 이 작품에서는 청춘에 대해 공감하고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일상적인 내용을 관객들에게 전하려면, 다시 말해 일상을 일상처럼 느끼도록 하기 위해 무수한 약속들이 쌓여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면서 “일상적인 상황을 다루다보니 배우들이 일상어의 결을 찾고 나누고 상황에 대한 인식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들어가야하는 부분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일상의 거울을 만나는 시간으로서, 지극히 일상적인 작품을 다루는 것은 배우들도 처음이다.
한편, 경주시립극단은 4월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돼 야스쿠니신사에 영혼마저 감금돼 버린 희생자들의 애환을 담은 연극 ‘귀로(歸路)’를, 5월엔 왕과 대신들이 공주를 위한 생일 선물을 고민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를 위한 가족극 ‘공주님의 달’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