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소견<慶州所見>
-서정주
아무도 이것을 주저앉힐 힘이 없는 때문이겠지.
왕릉(王陵)들은 노랑 송아지들을 얹은 채
애드발룬처럼 모조리 하늘에 두웅둥 떠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아랫두리를 벗은 어린아이 모양이 되어
그 끈 밑에 매어달려 위험하게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토함산(吐含山)에 올라서니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이지 아마
그게 시월(十月) 상달 석류(石榴) 벙그러지듯 열리며
웬일인지 소리내어 깔깔거리고 웃으며
산(山)가슴에 만발하는 철쭉꽃밭이 돼 딩굴기 시작했다.
누가 그러는가 했더니
석굴암(石窟庵)에 기어들어가 보니까
역시 그것은 우리의 제일 큰 어른 대불(大佛)이었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식지(食指)의 손톱께를 지긋이 그 응뎅이로 깔아
자즈라지게 웃기고,
또 저 뭇 왕릉(王陵)들이 즈이 하늘로 가버리는 것을
그 살의 중력(重力)으로 말리고 있는 것은….
-상승과 하강의 긴장과 조화, 경주
소견은 풍경에 대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해석하고 그것을 하나의 발견으로 제시하는 양식이다. 말하자면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에서 만들어낸 산물로서 기능한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하면 경주는 대단히 역동적이고 팽팽한 공간이다.
그것은 ‘신라라는 시공간에 대한 끌림’에서 기인한다. 시인은 두 가지 풍경을 본다. 첫 번째 풍경은 왕릉들이 애드발룬처럼 하늘에 떠서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그 끈에 매달려 부유하고 있는 상상이다. 시인은 아무도 이것을 주저앉힐 힘이 없는 때문이라 단정한다. 토함산에 올라서 보니 신라의 하늘에 대한 끌림은 선덕여왕 때문이었다. 선덕여왕릉이 시월 상달 석류 벙글어지듯 열려 산가슴에 만발한 철쭉꽃밭으로 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승의 힘을 지긋이 누르는 또 하나의 힘을 시인은 본다. 석굴암 대불이 선덕여왕의 둘째 손가락 부분을 엉덩이로 깔아, 살의 무게로 뭇 왕릉들이 신라의 하늘로 가버리는 것을 말리고 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과 대불의 이런 성애화는 성적이지만 유머스럽고, 조각의 자연미와 천진미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욕계 제이천(“짐의 무덤은 푸른 영 위의 욕계 제이천”, 서정주, 「선덕여왕의 말씀」)으로 올라가서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선덕여왕과, 현실을 이상적인 불국토로 만들려는 대불(“부불어오르는 가슴 속 사랑”, 서정주, 「석굴암관세음의 노래」)의 팽팽한 긴장과 조화가 오늘의 경주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아직 경주가 신라의 자장 속에서 움직이며 신라의 힘이 작용하며 다스려지고 있는 공간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경주를 역사와 시간을 뛰어넘는, 어떤 존중할 만한 종교적 감성 속에 성스러움마저 깔고 있는 이상적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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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