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슈샤크의 ‘침묵’에서 신앙의 배반의 순간에 서있는 신부는 예수님의 찌그러진 조각목으로부터 “밟아라.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서 왔다”는 음성을 듣는다. “밟아도 좋다”, “이래도 좋다” 그럴 정도의 자기포기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너무 움켜쥐고, 가리고, 놓지 않으려는 것 때문에 더 밟히는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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