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매서운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요즈음, 겨울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티 타임을 즐기면서 읽을 수 있는 따스한 시집 한 권이 새롭게 우리를 찾아왔다.
경주 문화의 생기를 사랑하고 호흡하고 있는 김성춘 시인(75, 동리목월 문예창작교수)이 새 시집 ‘온유(계간 시 전문지 ‘서정시학’에서 출판)’를 낸 것이다. ‘물소리 천사’ 시집 이후 6년 만의 일로, 이번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74시편을 싣고 있다. 고요하게 침잠하며 쓸쓸한 우리 영혼을 데워주는 이번 시집은 김성춘 시인의 12번째 시집이다.
시집 ‘온유’에는 경주 체험의 결과물이 여러 편 실려 있다. ‘계림의 늙은 회화 나무와 나’, ‘어떤 경주의 밤’, ‘깊고 푸른 경주’, ‘왕릉’, ‘경주시편1, 2’, ‘옥룡암에서1’ 등이 그것이다. 또 이 세상은 부조리와 비리, 부정과 부패로 가득차 있지만 시인은 손녀의 이름같은 혹은, 마음같은 따뜻한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온유라는 명사 자체를 탐구한 시도 있다.
‘너를 생각하면 산다는 건 신비다/ 너를 생각하면 어떤 슬픔의 강도 내겐 친구다/ 먼 곳에서 찾아오는 마법성의 새 한 마리/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솟아나는/ 비밀의 초록정원이여/ 네 안에서 나는 영원한 사랑의 샘물 퍼 올릴 것이고/ 또 어느 날 심장은 노을처럼 꺼질 것이다/ 동양의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새 한 마리/ 틈 사이로 솟아있는 비밀의 초록정원이여/ 너는 아직도 나의 푸른 심연/ 나의 맨발이 뜨겁다//’ -‘온유(溫柔)’ 전문
이 시는 김 시인 손녀의 이름이자 사전적 의미의 온유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시인은 슬픔에 대한 인식도 같이 한다. ‘물그림자’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비극을, ‘슬픔에 대하여3’에서는 청도 소싸움에서의 소의 눈물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귀로에서’, ‘천국보다 낯선1’, ‘뼈’ 등의 시에서는 평범한 일상과 가족,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 시인 어머니의 정성과 헌신에 대한 진한 그리움(‘어머니는 영도 아래 시장에서 김치를 팔았다/ 해질 무렵이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셨다/’ -‘천국보다 낯선1’ 중에서, 이하 하략)도 보인다.
문학평론가인 이승하 중앙대 국문과 교수는 “문명의 가속도와 정치의 부조리, 각박한 삶속에서도 우리는 따뜻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그리워한다. 시인의 제12시집 ‘온유’는 그러한 온유를 추구하는 시집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이뤄진 시 한편이 누군가의 상처 난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힘을 가진다”면서 김성춘 시인의 ‘온유’한 마음을 드러낸 아름다운 시집이라고 평했다.
김명인 시인은 “새 시집 온유는 ‘비밀의 초록정원’에서 시를 기다리다 낮잠이 든 늙은 시인 곁에 저절로 내려와 적히는 빗소리의 시편을 펼쳐 보인다”고 표현하면서 “이 시집에는 시에 걸어놓은 고백이 유난한데, 시인이 살고 있는 유서깊은 땅 경주의 풍광을 빌린다면 스스로 깊어가는 고요 속의 어둠과 같다”면서 김 시인의 ‘시는 썩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어둠이다(사각형의 어둠)’에서 이를 비유했다.
김성춘 시인은 “내 삶도 시도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시행착오 속에서도 꽃은 피고 나도 핀다”고 담담하게 토로한다.
김 시인은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4년 시 전문지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43년간 교직생활을 하다가 울산 무룡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울산대 사회교육원 시창작 교수를 지내고, 동리목월문학관에 출강하고 있으며 계간 ‘동리목월’ 기획주간, 경주신문 독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어진 시편’ 등 시집 11권을 출간, 제2회 월간문학 동리상, 경상남도 문화상, 제1회 울산 문학상, 제4회 바움문학상에서 문학상을, 최계락 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