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본지는 2017년 새해를 맞아 지역 단체장들을 차례로 만나 지난해 성과와 신년 계획, 소감 등을 들어보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세번째 주자로 경주문화원 김윤근 원장을 지난 12일 만났다. 평생에 걸쳐 체화된 역사성의 토대 위에 경주문화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김 원장은 생애 마지막 과업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던질 각오라고 전했다.
-먼저, 경주시민에게 신년 인사말씀(새해 덕담)부터 전하신다면?
올해 정유년은 닭띠 해로, 경주는 닭과 관련이 깊잖소? ‘계림’이라는 국호의 연원이 그것이지요. 닭이 새벽을 깨우는 첫 울음처럼 어둠을 깨어나서 밝음으로 가는 희망찬 새해가 되길 우선 기원합니다. 경주가 신라의 정신과 얼을 본받고 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網羅四方)’이라는 ‘신라’의 어원처럼 매일 덕을 쌓고 온 누리에 덕을 펼쳐 모두를 이롭게하는 한 해가 되길 또한 기원합니다. 가진 자들은 좀 검소하게 살고 높은 자들은 겸손하게 아랫사람을 대해주고 소외된 계층을 함께 어우러가는 경주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해 취임 후 경주문화원의 2016년 한 해를 되돌아보신다면(성과와 아쉬웠던 점에 대해)?
경주문화원에 문화원 회원으로, 이사로, 감사로 발을 들여 놓은 지는 20여 년 째입니다. 지난해 6월부터 원장직을 맡았고요. 경주문화원은 ‘문화 학교’ 19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경주문화논총’ 발간,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의 향토문화연구를 위한 사료조사, 경주전국연날리기대회, 향토문화유적답사, 향토사료관 운영, 문화유산해설사양성교육, 경주시 풍물경연대회, 향토민요경창대회, 은행나무 가을음악회 등과 ‘천년야행! 경주의 밤을 열다’ 등 주관 사업 및 경주시 위탁 사업을 연중 운영하고 있지요.
문화원은 예술인과 기능인을 키우고 새로운 첨단 예술문화를 이끌어가야 하므로 지방의 예술인들을 위하고 가꿔준다면 부족하나마 그들의 경험치가 늘어 훗날 실력이 향상 될 것이고 지역 사회를 이끌고 먹여살리는 뿌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중앙의 예술인들을 초빙해 임기응변 식으로 시비를 들여 공연 등을 하고 지역 예술인들은 큰 무대에서 소외되고 마는 현상입이다. 제가 걸었던 공약중 지역 예술인들의 역량을 배양하겠다는 것이 있었으나 지난해 국도비 10억으로 1차 ‘천년야행’ 프로그램을 수행중 미디어파사드의 경우, 외부 인력팀으로 꾸려 큰 예산을 들였지만 실패했던 예는 문화에 대한 검증이 안된 일을 신중하게 펼쳐야 한다는 교훈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2차 천년야행시에는 경주문화원 주도하에 자체 기획으로 지역예술인들과 함께 펼쳐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전국 천년야행 종합평가에서 3위를 차지했습니다. 올해는 지난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해 본다면 더욱 나은 성과를 얻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경주의 야경을 다른 도시가 벤치마킹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주문화원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경주문화원 원사건립이라고 봅니다. 지금 이곳은,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현재 인왕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주 전시관으로 이용되었고 그 후 경주문화원 사무동으로 사용된 바 있어 현재 문화원이 하고 있는 많은 강좌를 펼칠 수 있도록 지어진 건축물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펼치기 위해선 적절한 원사 건립이 시급합니다.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도서관이고 조상의 유물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박물관이며 예술문화를 배우고 익히면서 새문화 창조로 나아가는 장(場)은 문화원입니다. 천년고도에서 입만 열면 ‘문화’라고 외치면서 우리 경주는 문화원 원사도 없는 것은 모순이지요. 현재, 경주문화원 원사 적합지에 대한 용역조사도 마친 상태이고 많은 문화학교, 문화 사업을 올바르게 펼쳐 성과를 내려면 제대로 된 원사가 건립돼야 합니다. 경주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올바른 공간을 확보해 시민의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도 오래전 개발한 어르신 위주의 이들 프로그램도 물론 발전시키되 젊은층, 어린이를 위한 차별된 프로그램 시행도 중요합니다.
경주어린이 박물관학교와 박물관학교와 연계해 문화예술계 공인, 장인, 명인, 명장, 학예사 등 역사문화 고고학방면뿐만 아니라 향토 문화부문도 접목하려 합니다. 그 일환으로 여름, 겨울 방학동안 시험삼아 ‘경주어린이 향토문화학교’를 올해 처음 시작할 계획입니다.
늙은 문화원을 더욱 젊게 가꾸도록 하겠습니다. 연령층을 낮춰 미래 새문화 창조를 열고 일꾼을 길러가는 문화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관은 축제나 행사 등을 집행하면서 비전문가들이 세부 항목까지 미리 판을 짜고 비전문인력으로 행사에 소용되는 비용과 시간 위주로 편성하는 행사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관들이 지닌 문제점으로써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은 전문 기구를 조직하고 전문가들이 예술적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과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문화원과 경주시가 더욱 호흡을 맞추고 문화원을 믿고 지원했으면 합니다.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하고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능률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경주시민을 위한 일 아닙니까.
-2017년 경주문화원의 역점 추진 사업이 있다면?
저는 경주시민으로서 역사고도 특별법으로 인한 고통은 이해하지만 피해 의식은 지양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문화원장으로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교토나 베네치아, 아테네, 파리 등 우리와 유사한 도시 시민들은 큰 자부심으로 여기고 조상과 문화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문화재가 있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동반돼야 시민들이 즐길 수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걸림돌이 아니라 자부심과 긍지임을 인식시키는 것이 경주문화원의 또 다른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고도인 예술문화 도시에 살고 있는 즐거움을 알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기본적 관점을 바탕으로 올해 사업을 추진하려 합니다.
매년 해오던 사업에 기본 바탕을 두고 첫째는, 경주의 문화재 환수사업입니다. 우리의 문화재 외부 반출이 심각한 차제에 경주문화원, 신라문화동인회, 경주학연구원 등 많은 단체가 뭉치고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등과도 연계조직화 해 해외, 국내, 그리고 우리 지역내 각처에 흩어져있는 문화재를 우선, 제 자리를 찾도록 해야 합니다. 경주시내권에 산재한 문화재들에 대한 현장 파악부터 올해 시작할 것입니다. 조상의 유물을 제자리에 모시는 작업을 긍지로 삼고 그리고 국내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에 대한 국내 조사를 통해 반환을 요청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순회 전시라도 할 수 있는 원년으로 삼을 것입니다. 이는 해외 문화재 환수 요구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원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역내 문화예술인들의 사기 진작과 화합을 도모해야 하며 그런 장을 만들것입니다. 나 역시 그 분야의 최고 선배니까요.(웃음). 서로 비판은 날카롭게 하되, 서로의 애로 사항을 보듬어주고 격려를 통해 신라 문화의 얼을 잇는, 질서가 있는 관계로 말입니다. 경주에서 값지게 살다 간 선배 예술인들을 기리고 역사속에서 묻혀있는 분들을 구체적으로 재발굴도 하는 후배들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정체성이 분명한 예술문화축제를 미리 준비해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경주시에 대안으로 제시하는 축제안도 도출할 계획입니다.
-‘우공이산’ 정신으로 우직하게 일하려 합니다
74년 평생토록 제 몸에 깊숙이 배여있는 문화역사적 요소들을 통해 문화원장직을 내 생애 마지막 과업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던질 각오입니다. ‘우공이산’정신으로 우직하게 일하려 합니다. 이 자리를 떠난 뒤 후손들이, 8대 문화원장 김윤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이 시대도 행복해야 하지만 미래 후손들에게도 욕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알고 행하지 않는 우는 범하지 않으려 합니다.
에필로그-“늘 ‘나 자신부터’를 강조”
“어려운 시대일수록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주문화원은 옛것과 새것을 창조하는 문화 본부가 돼야한다”
평생 자전거를 타고 경주의 구석구석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답사한 것처럼 지난 12일, 인터뷰 당일에도 매서운 바람속을 뚫고 경주문화원으로 들어오는 김윤근 문화원장을 만났다. ‘자전거 타는 문화원장’에서 향토문화예술과 환경운동가로서 평생을 관통하는 정신성과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김 원장은 박물관어린이학교, 한림야간학교장, 전국야학협의회, 환경운동연합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고 신라역사문화관, 신라종묘, 문무왕유적성역화 등의 굵직한 사안으로 큰 일 들을 추진해 앞장 서 온 이다. 그러한 역사성의 토대 위에 경주문화원의 일 또한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주문화원의 최고 아쉬움으로 원사 건립을 꼽았다.
김 원장은 평생 이론과 현장에서 익힌 광범위한 철학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의식주 문화를 품위있게 자족하고 절제할 줄 아는 사회를 강조했다. 그 중심에서 김 원장은 누구보다 모범을 보이고 있었다. 늘 ‘나 자신부터’를 강조하는 것.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역동적 에너지는 넘쳤으며 문화의 지킴이로서 미래를 내다보고 양성하는 장을 지향한다고 했다. 일생을 문화환경의 현장의 중심에서 맹활약했던 그가 내뱉는 말들은 정직하고 강했다. 답습되어온 것들에 대해 생동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개혁의 중심에 있고자 했다. 때론 거침없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 역사문화에 대한 뿌리의식이 확고한 오늘의 자신을 ‘스승 잘 만나고 제자들과의 인연이 좋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겸손하게 전했다. 면밀한 지혜로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분석해 훗날 욕되지 않은 사회를 위해 용기있게 행동하고 그것이 진실이라면 응원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거듭 강조하고 기원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