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시를 써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시다. 이 시들이 나를 대신해서 기억해 줄 것이라고 믿어본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이한 정파(丁巴) 정민호 대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최근 ‘정민호 대표시집(도서출판 뿌리)’을 출간해 문단의 사표로 다시 한 번 역할하고 있다. 에스프리 넘치는 정민호 시인(76)을 지난 9일, 문화의 거리에 있는 ‘고려다방’에서 쌍화차 한 잔을 마주하며 만나뵀다.
시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창작욕과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는 엄격함도 함께 강조하는 시인의 일관된 시작 인생과 아직도 건재한 시심을 들으며 시인은 여전히 ‘푸른 강변’이라고 생각했다.
박종해 시인이 정민호 시인의 인간과 시에 대해 ‘이 시대 마지막 선비이면서 보헤미안, 그리고 로맨티시스트”라고 비유한 것도 떠올랐다. 선생은 경주의 체취를 간직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시인이자 한국적 운치와 멋으로 시를 빚는다. 절대적인 신서정의 영역으로, 담담하면서도 은근한 손짓으로 독자를 점령하고 있다. 또한 그의 시는 선비 정신을 축으로 자존의 높이를 지향한다.
시인은 “그동안 낸 시집들이 모두 산질(散帙)이 되어 시집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시를 뽑아서 한 권의 시집으로 묶게 됐다” 면서 “지금까지 어림잡아 1000여 편을 썼고 소위 대표시만 수록했다. 이는 내 시 작업에 대한 정리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시집 발간에의 소회를 밝혔다.
-등단 이후부터 최근작까지 1000여 편 중에서 선별해 700~800편 실어
이번 시집은 시인이 살아온 연대순으로 구성해 등단 이후부터 최근작까지 1000여 편 중에서 선별해 700~800편을 실었다.
이번 시집에는 제1부: 꿈의 경작, 제2부: 사뇌가, 제3부: 죽어가는 것을 위하여, 제4부: 낮달, 제5부: 역사의 땅, 제6부: 거기에 가고 싶다, 제7부: 순수의 늪, 제8부: 정민호의 시를 말한다 등 총 8부로 기획구성됐다.
정민호 작가의 다른 저서로는 시집 ‘꿈의 耕作(경작)’ 등 17권과 시선집 2권을 발간했으며 2013년 제14시집, ‘그늘’을 발표하며 창릉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산문집으로는 ‘시인과 잃어버린 팬티’ 등이 있으며 지난해, 우리의 역사 속에 살다 간 인물들의 한시를 모아 ‘한국인의 漢詩’란 책을 저술, 출간 한 바 있다. 이어 김삿갓 시집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인은 1966년 등단이후 경상북도문화상, 경주시문화상, 한국문학상, 펜 문학상, 한국예총예술대상 등을 수상하고 경주문협회장, 예총경주지부장, 경북문인협회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협 자문위원, 경주향교 사회교육원 한문지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초한 시창작과 한국문학의 살아있는 문단사 강의,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경주문예대학 원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문학이 ‘퍼진다 싶으면’ 시집을 내야 힘이 났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하나의 과정일까 형산강兄山江 물/ 언덕 위엔 몇 그루 능금나무 숲들,/ 시나브로 지고 있는 잎들의 내부로/ 10월의 바람은 허리에 둘려 화사스런 말씀을 낳고/ 돌아가는 자국마다 길목에 빗물이 내릴 때/ 저기 비에 깔린 선로를 밟고 어디로 갈거나/ 가서 맞닿는 산과 들/ 전쟁이 오가던 수수밭을 지나서/ 연이어 간지름 필 수 없는 신기루蜃氣樓위에/ 저뭄이 찾아와 지평선은 또 하루를 덮는다.’// 이하 하략.
-1966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작, ‘이 푸른 강변의 연가’ 중에서 -
시인은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는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7세 때부터 조부로부터 한문을 수학했던 것을 꼽았다. 1954년 3월 포항중학교에 입학해서는 3년간 한문을 수학하며 그 때부터 문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동서양 고전과 특히 당시(唐詩)를 읽고 큰 감동을 얻었다고도 한다.
시인은 1960년, 당시 전국의 유명한 교수들이 모여 있었던 서라벌 예술대학(현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입학하고 서정주, 박목월, 김동리, 평론가 조연현, 안수길 시인 등에게 직접 사사받으며 더욱 돈독하게 시 수업을 한다. 이로써 자연적으로 시를 일관되게 쓰는 동기가 됐으나 재학시에는 각종 문예공모 최종심에서 자주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드디어, 시인은 문학계 신인상 권위가 막강하던 시절, 등단한다. 1966년(27세)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이 푸른 강변의 연가’로 당선해 당당히 문단에 데뷔한다. 당시 최고 시인이었던 조지훈, 박목월, 송욱 시인이 심사를 했다고 한다. 데뷔 후 1970년 경주 근화여고에 첫 근무하면서부터 50년간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을 내며 쉼없이 다작을 이어왔다. 시인은 경주문협가입도 50년이다.
“시만 썼다하면 평론가들이 시평을 써주 던 시절도 있었지. 50대 이전에 큰 상들은 다 탔고(웃음)” 시인은 “시집을 내지 않으면 용기를 내지 못한다. 용기를 내서 시집을 내야 한다. 문학이 ‘퍼진다 싶으면’ 시집을 내야 힘이 났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올바르게 공부 하고 시 써야 한다”
시인 박목월은 1974년, 제2시집 ‘강변의 연가’ 서문에서 정민호 선생의 시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정군의 작품세계는 틀림없이 ‘毛筆(모필)적인 세계’라 할 수 있소. 동양적인 운치와 깊이를 가지는 것이며 그것을 다루는 자에게 펜보다는 정신적인 여유와 진지한 신중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오. 군의 작품에 일관되는 것은 한 마디로 견실, 소박, 성실한 것이 군의 시풍이며 바로 그것이 모필적 세계라 할 수 있소. 그것이 동양적인 슬기와 깊이를 가지고 삶의 본질적인 방향으로 심화를 꾀하고 있으며 이는 안정된 성숙감이요, 생기에 찬 삶에의 탄력성”이라며 시인의 시 세계를 명확히 평하고 있다.
정민호 시인은 “평생을 신서정 위주의 시로 일관했다. 시적 기교로써 서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원로로서 최근 시인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경계하고 난해한 산문시를 쓰는 일 또한 신중해야한다고 전했다. “올바르게 공부하고 시를 써야 한다. 시인의 가장 큰 덕목으로 우선적으로 세계문학서를 두루 섭렵하고 동서고금의 시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인 접근하기 어려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쉽게 풀이해 출간할 예정
시인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 깊이의 끝을 알 수 없는 한문을 연구하는 즐거움이 지극하다. 요즈음 삼국사기 원문 해석 작업을 하고 있다. 어려운 한자의 토를 달고 그 뜻을 풀이하고 있다. 아마 8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쉽게 풀이해 출간하고 싶다. 삼국유사의 경우, 신라에 관련한 것만 선별해 작업중이다. 출판사와 뜻이 맞다면 인연이 되는 곳에서 출판만 하면 되는 시점이다”고 했다. 어떤이도 감히 해낼수 없는 어려운 작업을 묵묵히 하고 있는 시인의 지고(至高)한 작업에 경주시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보였다.
시인은 ‘내 시를 읽어준 이들에게 그저 밥 한 끼 대접하는 시간’을 가진다. ‘정민호 대표시집’ 발간 기념일에 맞춰 경주예술의전당 센텀뷔페에서 14일(토) 오후 4시, 출판기념회를 열어 독자들과 함께 한다.